‘이슬털이의 두 출처’,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연재하는 내 칼럼 ‘진도의 상장례 다시 읽기’ 세 번째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호남학진흥원 연재를 시작한 까닭은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좀 더 명료히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안동국학원에 대응하여 장차 이를 바를 내 방식으로 풀어내는 셈이랄까. 내 속셈은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지고 일어나던 기층문화의 맥락 추적에 있다. 겹치고 포개져 마치 일노래의 후렴처럼 늘 반복되는 말들이, 귀한 지면을 소비하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돌아와 찐 감자와 신 김치, 막걸리 한 ...
2023.06.22 14:42장마가 시작되는가. 비가 내린 뒤에도 뭔가의 미련이 남는지 구름이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발아래 바다를 이룬다. 햇살 좋고 꽃이 피어야만이 잘난 것은 아닌 듯,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세상이 있고 없고다. 문전옥답이라는 말 대신 여기서는 문전비경이라고나 할까. 비경은 아무에게나 다가오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도 쉽게 맞이하고 있으니 그 복은 또 어디에서 왔을꼬.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산 좋고 물 좋고를 알아버리면 낭패라 한다. 세상을...
2023.06.22 14:31세계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은 생동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넘실대며 무한한 상상력에 바치는 오마주라 할만큼 이 도시를 찾는 모든 이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필자에게 뉴욕은 어떤 도시인가라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뉴욕은 나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도시였으며, 행복이 무엇인지 도시가 답하고 감사와 감동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천을 찾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도시였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도시가 자리 잡고 세계 경제와 문화를 선도해 온 뉴욕에서 세계 클래식 공연계의...
2023.06.15 16:28조선이 일본으로 보낸 외교사절을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라 한다. 고종 때는 이름을 수신사(修信使)로 고쳐 부른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풀이다. “통신사는 조선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사절이다. 사절의 명칭은 조선측은 통신사, 일본측은 일본국왕사라 했다. 태종 때부터 통신사의 파견이 정례화되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총 20회(조선 전기 8회, 조선 후기 12회)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교되는 것이 연행사(燕行使)이다. 연나라의 수도가 연경(燕京)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나라의 수도, 지금의...
2023.06.15 13:44가끔 우리는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1940년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아르헨티나)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 작품은 ‘4차원 예술(tetradimensional art)’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보여 주는 개념미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기존의 예술에서 정의 내려진 모든 시적 · 예술적 · 조각적 형태들은 ‘4차원 예술’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깊게 베인 무지의 캔버스, 구멍 뚫린 판금...
2023.06.11 14:56기억(記憶)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도, 풍경도, 건물도 매한가지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억을 한다. 똑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남는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그 위에다 다른 생각을 입히고 각색도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극히 정상이다.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표지석도 세운다. 기록관 같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의도를 담은 표지석이나 건축물은 부침을 겪기 일쑤다. 한때 ‘특수’를 누리다가, 손가락질을 받는다.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담양 성산마을을 생각한다. 40여 년 전, 1982년 3월 ...
2023.06.08 15:4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피란민들은 슬로바키아를 통해 체코로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체코에 입국하는 난민의 47%가 여성이고 33%가 아동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우크라이나 난민 460,000명 이상이 체코에서 임시 보호 비자를 받았지만, 2022년 말까지 약 355,000~390,000명만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산하였다. 현재 체코에 와서 일하는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은 우크라이나의 중부 및 남동부 지역 출신들이다. 체코 노동 사회부에 따르면 2022년 6월에는 약 68,000명...
2023.06.08 15:38행주나루에 얽힌 얘기다. 옛날 어느 노스님이 강을 건너러 나룻배를 탔다. 강을 다 건넜는데 배삯이 없던 스님은 도포 주머니에서 갈댓잎을 몇 개 꺼내 주었다. 사공은 돈을 주는 것인 줄 알고 받았으나 갈댓잎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이없어하며 강물에 던져 버렸다. 그랬더니 갈댓잎들이 물고기가 되어 헤엄쳐 나가는 것 아닌가. 이 물고기가 바로 웅어였다. 비싼 값의 배삯을 받아놓고도 사공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한강에는 웅어가 갈댓잎처럼 많이 헤엄쳐 다니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이 평소에 웅...
2023.06.08 13:06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옛적에는 뉴욕의 빌딩 숲 사진을 보고 놀랐는데 지금은 우리 주변도 별 다르지 않다. 경제 수준의 척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요즘 드나들면서 눈에 띄는 것은 여기저기 인간의 집짓기 현장이다. 살기도 팍팍하고 인구도 급감하고 있다는데 무슨 계산으로 저리도 많은 집들을 짓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초고층으로……. 땅덩어리가 작아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높은...
2023.06.08 12:15독일 연방 내무부에 따르면 2022년 2월 말부터 2023년 4월 9일까지 1,061,389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중앙 외국인 등록부(AZR)에 등록되었으며, 이중에서 보호 지위를 가진 사람은 814.969명이었다. 독일의 연방 이민 및 난민 사무소(BAMF)에 따르면, 2023년 4월 9일 기준 등록된 난민의 약 96%가 우크라이나 국적자이며 이중 성인의 약 68%가 여성이고 31%가 남성이다. 등록된 우크라이나 난민의 약 38%는 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평균 연령은 약 28세이다. 그들 중 ...
2023.06.01 15:22내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구상한 제목이 만경보(萬景譜)이다. 문자 그대로 만 가지의 경치를 노래하겠다는 뜻이다. 고은의 에 기댄 작명이긴 하나 그와는 결이 다르다. 김지하가 초기에 ‘이야기 시’를 써서 담시(譚詩)라 이름 붙였던 바를 상고한다. 고은이 1986년부터 2010년까지 다룬 인물이 5,600여 명에 이른다던가. 30권 4,000편이 넘는다고 하던가.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던 방대한 작업이니 어찌 구닥다리 시집 한 권 내고 그에 비길 수 있으랴. 다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표방처럼 시가 갖는 선한 의지를 우리 공...
2023.06.01 14:48뉴욕 유학 시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필자에게 가장 신나는 놀이터였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등의 영상이나 CD 등 오디오로 접했던 세계 최고의 가수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입석을 구매해 객석의 조명이 꺼지면 가끔 빈 좌석에 앉는 요행을 바라며 설레게 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은 나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유학 생활을 했던 이탈리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특...
2023.06.01 10:39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시작된 지 벌써 1년 3개월이 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군사 분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인명 피해와 막대한 규모의 사회 기반 시설 파괴 및 환경 피해를 초래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민의 고통을 완화하고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제 사회는 재건 과정의 주요 구성 요소인 거버넌스 구축, 복구 계획, 자금 조달 계획 및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가능한 한 빨리 시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2022년 7월 5일 스위스 우...
2023.05.25 14:28별난 섬이다. 섬을 몇 바퀴 돌아도 강아지 한 마리 만날 수 없다. 닭이나 병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나 지천인 무덤도 전혀 없다. “예부터 내려오는 당제와 연관됩니다. 섬이 다 그렇지만, 쑥섬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믿음이 강했어요. 당제를 지내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되돌아와서 목욕재계를 했어요. 개와 닭의 울음소리도 신성한 제사에 방해가 된다고 기르지 않은 겁니다.” ‘쑥섬지기’ 김상현 씨의 말이다. 마을 뒤편 당산에도 아무 때나,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섬에 무덤이 없는 것도 매...
2023.05.25 13:57내친김에 덧붙인다. 지난주 칼럼에서 나는 우리 고전의 백미라는 향가 제망매가를 다루었다. 기왕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이메일 칼럼으로 다루었던 후반부도 마저 끄집어 내둔다. 독자층이 다르므로 설명이 친절하지 못하다는 꾸중을 들을 수 있어서이다. 나무라는 이들의 생각을 새로이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 간데 마다/ 형제같이 화목할거나/ 오영방에 깊이 들어/ 형제투쟁을 마다하였네/ 여래연불(염불)로 길이나 닦세/ 남무야 남무여/ 냄무아미탈 길이나 닦세/ 여비 옥여갖춰...
2023.05.25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