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나 그가 쓴 작품의 이름의 간판을 볼 수 있다. 주로 유명 레스토랑이나 음악 학원, 또는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간판으로 자주 쓰이는데 그러기에 푸치니는 다른 작곡가들 보다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이 유난히 후대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높은 완성도의 대본과 수려하고 완벽하다 할 수 있는 음악 구조를 그 이유라 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관객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는 주요 작품들은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호령하기까지 한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
2024.01.04 17:112024년을 청룡의 해라고 한다. 음력으로 쇠는 단위이고, 역(易)으로 따지면 입춘을 기점 삼는다. 요즘은 양력과 병치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고대의 설날로 따지면 동짓날을 기점 삼기도 한다. 하지만 관념이나 제도 모두 늘 재구성되어온 것이라, 핏대 올리며 따질 이유까진 없다. 지구의 공전이나 고대로부터의 역학이 그렇다는 것이다. 열두 개의 해마다 상징을 넣어 의미를 부여한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한 해를 ‘띠’라고 부르는 것은 고리, 매듭, 환대(環帶) 따위와 상관된다. 자세한 것은 따로 다룬다. 열두 띠 중에서 용띠가 이...
2024.01.04 10:5780년 전, 1943년 봄, 독일군이 점령한 볼린에서 대규모 인종 청소가 시작되었다. 대학살은 1943년 내내 그리고 1944년 전반기에 볼린과 갈리치아 전역에서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이곳은 폴란드의 일부였다. 현재의 볼린 지역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해당된다.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남부 지역이며 중심 도시는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폴란드 크라쿠프이다. 이 범죄 행위는 나치가 아니라 폴란드인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과 우크라이나 저항군의 무장 세력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은 폴란드 마을을 포위하고 여성...
2023.12.28 15:202023년 계묘년을 보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해였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뜬금없고 가닥 없는 퇴행이 도드라진 해였다. 세상이 정치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여 내심 불편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우리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형국이니. 정치에서 벗어나 오로지 문화를 말하고 문화로 실천하며 문화로 승부하는 세상이 올 수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정리해둬야 할 일들이 많지만, 논쟁은 언급해두고 건너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전라도천년사 편찬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하여 2018년...
2023.12.28 13:22‘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유달산 일등바위에 올라/ 거북이 등처럼 떠가는 섬들을 보라// 고하도 용머리를 휘돌아/ 삼색 깃발 나부끼며 귀항하는/ 고깃배가 끌고 오는 갈매기 떼를 보리….’ 김충경 시 ‘목포에 가면’의 앞부분이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섬들 가운데 맨 앞자리에 선 섬이 고하도다. 고하도는 ‘용섬’으로 불린다. 섬의 생김새가 용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졌다. 실제 섬의 지형이 용처럼 길게 늘어서 목포의 남쪽을 감싸고 있다. 목포로 향하는 큰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준다. 고하도는 목포시 달동에 속한다. ...
2023.12.28 13:08서해안의 매서운 바람 앞에 섰다 갯벌 깊숙한 곳에서 바지락을 캐는 아낙들도 들어가고 갈매기들과 나만 남아서 석양을 지켜본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일찌감치 돌아설 수는 없는 일. 늘 있는 일에 같은 것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느낌이 새롭지 않던가. 지금의 나 또한 지고 있는 해를 보고자 하기 보다는 그 분위기에 익어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잔뜩 찌푸린 날에도 틈새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그 기회가 주어짐을 보아왔다...
2023.12.28 12:52위대한 작곡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을 ‘樂聖(악성)’이라고 부른다. 후대에 가장 추앙을 받는 음악가, 고전파 음악의 집대성자 베토벤은 하지만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오페라 작곡가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초기 그가 작곡한 가곡 ‘아델라이데’나 ‘입맞춤’ 등을 들어보면 이탈리안적 수려한 선율에 깊은 감성을 자아내는 화성은 당시 민중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장르인 오페라를 성공적으로 제작했을 법도 한데, 그는 고전파 시대를 함께한 모차르트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유난히 모차르...
2023.12.21 17:54~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 그대 잘 가라~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을 뒤로하고 외다리를 건너오던 이수혁(이병헌)이 쓰러진다. 긴박한 군사들의 동선이 서로 뒤엉키는데, 비 내리는 숲과 나무들 사이로 귀에 익숙한 선율들이 헐떡이며 쫓아온다. 끝내 눈을 감는 주인공의 시야, 마치 헐거운 수의처럼 찢어지는 빗방울들, 빗살무늬의 가락들, 낙엽들, 바람들, 아니 핏방울 선연한 이야기들이 천천히 내려...
2023.12.21 12:35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는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자신의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러시아 세계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반러시아 압력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고, 단기간에 독립된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적 사회적 기반은 완전히 침식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세대에게 러시아와의 공동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혐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매우 심각한 상태다. 러시아 혐오로 대표적인 것으...
2023.12.14 14:47“한평생 짊어지고 온 삶/ 땅끝마을에 내려놓고/ 담배 한 대 피워무는 그대/ 아스라이 걸려 있는 시간들을/ 무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네/ 그렇게도 보기 싫고/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발자국들 속에/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네~” 지난 양력 동짓달 초순, ‘땅끝순례문학관’에 울려 퍼진 잔잔한 노래의 들머리, 내가 장구 하나 들고 남도 고유의 당골(무당) 소리로 음영(吟詠)하였다. 조각가 강대철이 소설가 송기원에게 헌정한 시(詩)에 음률을 넣은 곡이다. 강대철이 발의하여 준비하고 이 힘을 보탰으며 해남의 땅끝순례문학관이 주...
2023.12.14 12:46“썩을 놈들이 무담씨 시비를 걸어갖고 그라요. 거기 눈치 보느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을 잠가났다요.” ‘혁명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의 화순 능주 옛집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의 얘기다. 어르신의 말투에서 정율성 기념사업에 딴지를 걸고 있는 정부의 처사에 대한 불만이 묻어난다. 정율성 옛집의 안방 문고리에 ‘수리중’이라는 빨간 안내 문구가 걸린 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보훈부장관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정율성 기념사업에 대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한창 진행되던 광주와 화순의 정율성 기념사업이 더디거나 답보상태에 빠졌다...
2023.12.14 12:24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겨울바다를 실감케 한다 해변에 거대한 바위가 있다 생김새에 따라 ‘코끼리 바위’라 부른다 여기는 서해바다 고군산도의 몽돌해변이다 여름철에는 제법 인기가 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어 물결소리만 들려오는 숨어있는 분위기다 싸늘함이 옷깃을 더욱 여밀게 하고 먼 곳에 혼자 떨어져 와 있는 듯한 쓸쓸함이 밀려들지만 이 분위기가 싫지 않다 아무도 없는 몽돌밭을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시선이 꽂히는 것이라도 있으면 집어도 보고. 그러다가 뜻밖의...
2023.12.14 12:13그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움직이는 예술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예술이 오랜 시간 시대적 문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는 역사적 증명이기도 했다. 어쩌면 예술가는 대중들에게 시대의 문제를 법, 제도, 정책보다도 더 나은 방향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나가는 시대의 행동가인지 모른다. 이제 예술의 주제와 영역은 미술관의 공간을 넘어서 자연과 기후, 지구의 문제까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졌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많은 과학자와 현대 시각 예술가들이 앞 다투어 의...
2023.12.10 15:09서양인에게 동양은 신비롭기 그지없는 미지의 세계이자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의 고도화로 인해 쏟아져 나오는 산물을 소비해줄 매력적인 시장이기도 했다. 서양의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포의 위력에 놀란 일본은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진보된 문물을 받아들였다. 오페라 의 배경인 일본의 나가사키 항은 제일 먼저 제국주의 열강에 문호를 개방한 항구도시이다. 이곳에는 무역을 위한 상선과 더불어 늘어나는 교역으로 인해 서양 각국은 영사를 파견하였으며, 자국민 보호와 그들이 점령한 아시아의 식민지로 가는 경유지로 사용하였다. 항구 주...
2023.12.07 17:48마흔 번의 봄날이 다녀간 해였다. 구두통 들고 꼬꾸라져 죽었던 구두닦이의 피도, 나팔바지 멋지던 넝마주이의 두개골도, 남도땅 어느 억새 아래 진토되었을 시간,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누이, 아! 누군가의 사랑, 이승을 뜨지 못한 그 아무개들의 넋이 강산마저 무시로 변한 무대로 현현하였다. 두드리는 북소리는 마디마디 천지를 흔들었다. 격조 높은 선율들이 조우 해낸 무대의 여기저기 묵혀두었던 울음들이 백색 무희의 옷자락을 흔들어댔다. 그들의 몸짓은 꼬이고 뒤틀린 이 환장(換腸)할 세상에 토해내는 핏덩이 같은 것이었다....
2023.12.07 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