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민스크 협정이 잘 이행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민스크 협정은 돈바스에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할 때까지 그중 단 하나도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민스크 협정 실패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러한 협정을 방해했다고 서로 비난해 왔다. 따라서 민스크 협정이 어떻게 채택되었고, 왜 협정 조항들이 이행되지 않았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은 앞으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4.18 15:012014년 4월 14일 우크라이나 돈바스에서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조로 거의 8년 동안 지속 되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지역 일대를 가리킨다. 돈바스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2014~2015년에 벌어졌고, 이후 분쟁은 심한 단계에서 진지전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에서는 군인과 민간인, 성인과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이 죽었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이 기간에 14,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고 했다. 또한...
<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4.11 14:57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하였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행동이었다. 그러면 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필요하겠지만, 푸틴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 침공의 핵심적 원인이나 배경으로 냉전 종식 이후 나토(NATO)의 확장 정책을 지목했다. 러시아로서는 NATO의 동진을 러시아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 인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2024.04.04 13:482024년 3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 140명, 부상 182명이 발생했다. 이는 현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테러 공격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1991년 이래 현재까지 러시아에서 발생한 큰 테러 공격으로 40명 이상이 희생자가 된 사건은 이번 사건을 제외하고 무려 총 15건이나 된다. 이들 대부분은 체첸공화국이나 다게스탄 공화국,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의 극단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한 병원 건물 인질 테러, 주거용 건물 폭파, 시장 폭발, 자살 폭탄 테러, ...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3.28 10:23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다수의 서방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는 러시아로의 상품 수출과 러시아로부터의 원자재 수입을 금지하게 했다. 기업 철수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순으로 많이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의 기업 또는 상장된 기업의 경우 철수하는 경향이 크며,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의 기업 또는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남기로 하는 경향을 보였다. 2023년 12월 7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운영되...
2024.03.21 14:282024년 3월 러시아 대선은 진정한 정치적 대안 간의 경쟁이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헤게모니를 보여주는 선거가 될 것이다. 이는 서방과의 연결이 완전히 단절되고 러시아 내에서 야당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실질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선거의 민주적 신뢰성보다는 형식적 절차로서 의미가 더 있어 보인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대선 시기까지를 살펴보면 크렘린은 선거운동규칙, 야당 탄압 등으로 공공 정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투표가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2024.03.14 13:542023년 8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력 평가와 경제 규모 측면에서 세계 5위, 유럽에서 1위 경제가 되었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결과이며 서방의 제재정책 효과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재는 국가에 대한 경제적 폭력의 도구이며, 이는 약자에게 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제재는 또한 정치적 폭력 도구이기도 하며, 그 목적은 제재를 받은 국가가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항상 특정 지역, 궁극적으로는 세계에서 패권을 차지...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3.07 14:57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아니라 나토(NATO)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평화 협정에 대한 전망은 나오고 있다. 2024년 2월 9일 공개된 미국 언론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르든 늦든 간에 평화적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2024년 1월 25일 미국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우크라이나 휴전에 대한 물밑 대화 제의를 간접적으로 했다고 보도했다. 작...
2024.02.22 10:25전쟁은 이제 만 2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누구에게도 완전한 승리는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은 위기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여러 전선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인명 피해는 늘어나고 큰 반격은 없는 소모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가장 심각한 피해는 인명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리 루첸코 전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2024년 1월 7일 우크라이나 TV에 출연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에서 우크라이나가 50만명의 사...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2.15 13:50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해외로 피란한 자국민의 모국 귀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구학적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쟁에 나가 싸울 군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피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숙련된 노동력 또한 부족하다는 점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전에도 인구 통계학적으로 심각한 쇠퇴를 겪었다. 수년 동안 사망률은 출생률을 크게 초과했으며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다른 나라에서 살고 일하기 위해 떠났었다. 우크라이나의 인구가...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4.01.25 11:07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서 두 번의 큰 이주 물결을 가져왔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가장 큰 러시아로부터의 이주였으며, 모국을 떠나는 러시아인들에게는 패닉적인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2022년 3월 국경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서둘러 나라를 떠났다. 이때 떠났던 많은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부분 동원령을 발표했다. 이 후 러시아인들은 다시 피신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가격보다 훨씬 상승한 항공권 구매 외에도 공항과 육지 국경에서는 수 킬로...
2024.01.11 14:3180년 전, 1943년 봄, 독일군이 점령한 볼린에서 대규모 인종 청소가 시작되었다. 대학살은 1943년 내내 그리고 1944년 전반기에 볼린과 갈리치아 전역에서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이곳은 폴란드의 일부였다. 현재의 볼린 지역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해당된다. 갈리치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남부 지역이며 중심 도시는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폴란드 크라쿠프이다. 이 범죄 행위는 나치가 아니라 폴란드인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과 우크라이나 저항군의 무장 세력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은 폴란드 마을을 포위하고 여성...
2023.12.28 15:20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는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자신의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러시아 세계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반러시아 압력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고, 단기간에 독립된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적 사회적 기반은 완전히 침식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세대에게 러시아와의 공동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혐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매우 심각한 상태다. 러시아 혐오로 대표적인 것으...
2023.12.14 14:47우크라이나에서는 문화에서 탈러시아화가 이미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지정된 기간 동안 사용된 러시아 및 러시아인이라는 단어를 우크라이나 및 우크라이나인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화적 대체는 올바른 해석으로 역사를 찾기보다는 오늘날 구소련의 실패한 국가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강요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압력은 너무 공격적이다. 그래서 이는 러시아 지우기라고 할 수 있으며 반대로 공격적 또는 강제적 우크라이나화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수 세기 동안 ...
2023.11.30 13:34전쟁은 포병과 군인뿐만 아니라 역사와 함께 싸우기도 한다.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행동을 합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역사로 향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전쟁 상황 속에서도 역사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주요 쟁점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하나의 민족인가, 현대 우크라이나는 레닌의 작품인가, 노보로시야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등이 있다. 분석은 주로 러시아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은 1187년 키예프 연대기에 처음 등장한다....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2023.11.16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