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양성현>왜 역사 왜곡에 침묵하는가? 이덕일의 ‘역사교과서’를 보고
양성현 작가
2025년 07월 27일(일) 16:32
양성현 작가
광주와 전남의 역사학계, 그리고 호남학진흥원은 왜 이토록 뼈아픈 역사 왜곡에 침묵하는가.? “광주에서 식민사관의 뿌리를 파헤친다!”고 외치던 바로 그 학자가 펴낸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에, 뿌리 깊은 ‘호남 비하 사관’이 버젓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2’는 호남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을 여과 없이 쏟아내며 충격을 안겨준다. 문제는 이 책이 단지 한 개인의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교과서’라는 거창한 외피를 쓰고, 역사적 사실인 양 둔갑하여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참담하다.

책 86쪽을 보라. “(이이가 죽고 동인들을 중용하자) 선조 22년(1589), 황해도에 있던 서인의 모사 송익필이 전라도의 정여립을 역모로 고변하는 ‘정여립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정여립 사건(기축옥사)의 최초 고변자는 ‘송익필’이 아니라 당시 황해도 관찰사였던 ‘한준’이다. 이는 ‘선조실록’ 등 1차 사료에 명확히 기록된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송익필은 당시 황해도에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를 “황해도에 있던 서인의 모사, 고변자”로 지목하며 허위 정보로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 ‘모사꾼(謀詐)’을 연상시키는 ‘모사’라는 표현 역시 심각하다.

왜곡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정여립 사건의 배후를 ‘서인’, 실행자를 ‘정철’로 지목하면서 “정철은 동인들에 대한 정치보복의 호기로 삼아 혹독하게 심문했다”, “이 사건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라는 식의 서술을 이어간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이와 정반대다. 기축옥사 직후 권력은 유성룡에게 있었다. 그는 형 유운룡과 측근 권문해 등을 추관으로 포진시켰다. 유성룡의 대과 동기인 한준이 고변하고, 인사권은 자신과 역시 동기인 최황이 연이어 쥔다. 동인이 수사권 인사권을 모두 장악한 주체로 나선 것이다. 정철이 위관으로 임명된 것은 사건 발생 한 달 뒤였고, 그리고 20여일 만인 12월에는 임금의 눈 밖에 난다. 이 시기를 두고 “서인이 정권을 잡았다”고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며 책임 전가다.

그 무렵 터져 나온 구호가 “유성룡은 물러나라!”였다. 이 외침은 마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연상시킨다. 충청도 대쪽 선비 조헌, 그리고 양산숙과 양천회 상소에 이어, 정암수, 양산룡 등 호남 유생 50여 명이 연명 상소로 “권력자 유성룡을 버려야 조선이 산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조정은 되려 “이들 유생들을 잡아들이라!”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 1590년 정월, 위관마저 동인 인사로 교체된다. 바야흐로 유성룡 중심의 정치 장악, 즉 ‘유성룡 천하’가 더욱 노골화된 것이다.

책은 심지어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비판(95쪽)도 지나치다. 16년 전 오항녕 교수가 “이 소장! 오독 그만하시오!”라고 일침을 놓았음에도, 이덕일 소장은 반성 없이 여전히 ‘유성룡 영웅사관’의 아집에 갇혀 있다. 오히려 그 오기가 더 심해진 듯하다. 90쪽에서는 “유성룡의 작미법 등 개혁 정책 덕분에 굶주린 백성을 살렸다”, “유성룡이 주도한 혁명적 개혁 정책에 힘입어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식의 황당하고 과장된 서술이 반복된다. 마치 유성룡 한 사람이 조선을 구한 것처럼 묘사되는 비상식적인 역사 해석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책이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전라도천년사’를 문제 삼았던 인사들이 이 책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심지어 보급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자기모순이자 위선이다.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지역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사실 왜곡이 담긴 책이 광주·전남에서 지식인들의 방조 속에 퍼지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진실을 바로잡아야 할 지식인 사회가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면, 또 다른 왜곡의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광주와 전남은 진실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상징적인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조차 역사 왜곡 앞에 침묵한다면, 과연 누가 역사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고 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