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괴물강우
최도철 미디어 국장
2025년 07월 21일(월) 15:27
최도철 미디어 국장
 이상한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여름 날씨가 아니다. 7월 초순경, 온 듯 만 듯 일찍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힘들게 하더니, 숨돌릴 새도 없이 이번엔 폭우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물폭탄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은 괴물강우다.

 기상청이 이번에 내린 비를 예전 자료와 비교해 보니, 하루 동안 400mm의 폭우가 쏟아진 충청과 호남은 200년 빈도의 폭우라고 한다.

 16일부터 닷새간 쏟아 내린 극한강우로 많은 생명들이 숨졌고, 호남, 충청, 영남할 것 없이 전 국토에 큰 생채기가 났다. 21일 기준 18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실종된 사람도 9명이라고 한다. 모든 군민에게 대피령을 내린 합천군을 비롯해, 비를 피해 처소를 등진 이재민도 수 천명에 달한다.

 삶의 터전도 황폐화 됐다. 도로가 떠내려 가고, 다리가 끊긴 곳도 많다고 한다. 살던 보금자리에 빗물이 들이닥쳐 가재도구를 죄다 버린 집도 허다하다. 출하가 낼모레인 농작물이 물에 잠기고, 자식같이 기른 가축들이 폐사하는 등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히 기록적인 수해가 발생한 것이다.

 옛 자료를 뒤져 보니 우리 선조들도 큰 물난리를 겪은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세종 25년(1443년) 6월 9일자 실록에 이렇게 나와 있다.

 “장마로 인해 도성 인근 백성들의 집이 허물어졌으며, 추수도 기대할 수 없어 흉년이 우려된다하니, 의정부는 구휼책을 아뢰라” 그 결과, 임금은 곳간을 열어 세곡을 풀었고 세금도 깎아 주었다. 자연 앞의 겸허함과 백성을 향한 어진 마음이 조선 정치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1925년 7월 한강이 범람해 한양 도성 대부분이 물에 잠긴 을축년 대홍수나, 사망·실종 190명, 이재민 20만명의 역대급 피해를 남긴 1984년 7월 중부지방 집중호우 기록도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이 같은 극한호우 패턴이 일상화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알던 장마는 이젠 끝났고, 이상기후가 ‘뉴노멀’이 됐다는 것이다. 기상청도 장마 예측이 무의미해졌다고 판단해 언제부턴가 장마 예보를 중단했다.

 기상학자들은 갈수록 대형산불, 가뭄, 폭우, 폭염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닥쳐올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른바 상시 재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장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고 마음까지 물에 젖은 사람들을 위한 도움도 절실하다. 정부가 나서 특별재난구역 선포와 함께 맞춤형 대책을 펼친다고 한다. 피해복구는 속도가 관건이다. 절차나 형식을 최대한 건너뛰고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지원만이 정답이다.

 비록 마을의 둑은 무너졌을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둑은 분명 온전하게 남아 있다. 수해를 당한 사람들이 모든 아픔을 딛고 하루속히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굴 수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
최도철 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