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윤영백>안전이라는 이름의 감시, 교육의 씨앗을 말리다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2025년 07월 20일(일) 16:56 |
![]() 윤영백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살림위원장 |
죽음 여행이 일상화된 이후 사람들에게 천국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선행(善行)점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커트라인까지 밝혀지면서 세상 사람들은 과도하게 착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특정 행위로 돌아오는 이익이 계산 가능할 때, 착한 일은 가능하며, 그것을 착한 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신의 시선이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점수를 매기는 세상, 자유의지가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학교에 CCTV 설치를 부추기는 조례를 비판하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다.
지난달 16일, 광주광역시의회는 ‘광주광역시교육청 학교 내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설치·운영 조례안’을 최종 의결했다. ‘학교장이 지정하는 중요지역’도 필수감시 구역으로 명시된 것이 눈에 띄는데, 그간 설치금지구역이었던 ‘휴게공간’, ‘복도’, ‘교실’ 등 일상 공간까지 CCTV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 광주지역 학교에 공식적으로 설치된 CCTV는 약 7,000대라 하는데, 매년 60억 이상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니 CCTV의 눈길이 더욱 빼곡해질 것이다. 조례의 명분처럼 학교가 더 안전해질지는 의문이지만, 관련 업계 사장님들의 주머니가 빵빵해질 것은 분명하다.
기시감이 든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려면 ‘모든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동학대가 보도되면서 국회와 정부는 CCTV설치 의무화를 숨차게 밀어붙였다. 이제는 ‘모든 구성원의 반대’가 있어야 CCTV를 거부할 수 있다. 현재 광주지역에서 CCTV를 설치하지 않는 어린이집은 아마도 공동육아형태로 운영되는 ‘햇살가득 어깨동무’뿐이다. 이들은 매년 CCTV설치 반대 동의서를 받는다. 광주광역시는 CCTV를 설치한 어린이집에만 안심보육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이들은 이 돈을 받지 못한다.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안심을 위해 보육지원금까지 준다면서, 안전을 감시가 아닌 관계에서 싹틔우는 부모들만 지원을 받을 수 없다니 참 역설적이다.
‘CCTV설치 범위가 곧 안전지대’라는 관료적 해법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국가가 영유아 보육을 시장에 맡기면서도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 가난하게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사실, 한 아이를 사랑으로 만나는 여유를 가진 교사보다 여러 명 아이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대우받기 쉽다는 사실, 자기 노동에 자존감도 갖기 힘든 상황에서 이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도록 일상을 감시하겠다는 폭력은 지워진다.
학교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교육은 조화롭게 뒤섞이는 일이다. 입시, 경쟁, 성적 등으로 자존과 공존, 배려의 토양은 사막화되도록 방치하거나 가속하면서, 정작 교사와 학교에는 갈등을 풀 힘과 믿음을 주지 않는다. 갈등과 폭력의 원인을 성찰하기는커녕 만남 자체를 감시의 눈길로 억압하는 것은 교육 회복의 길을 찾기보다 교육 주체들을 판옵티콘(Panopticon)안에 감금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
AI가 손안에 있는 시대, 학생들이 학교에서만 쌓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낯선이를 만나고, 경계가 충돌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를 읽어 주고, 그 힘으로 더 성숙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세포분열이 건강하고,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북돋는 일일 텐데, 이런 일은 공간의 기본값이 ‘신뢰’일 때 가능하다. 그런데, 감시는 불신을 공간의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경계 안으로 움츠리도록 눈을 부라린다.
CCTV 안에서 감시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교육현장에서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존중하는 감수성을 배우기보다 통제의 눈길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CCTV 안에서 도덕적으로 구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민주시민의 모습인가?
물론, CCTV에 꼬리 잡힌 비행과 폭력은 응징될 수 있는 증거가 확보될 것이고, 한동안 폭력이 효율적으로 억제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다만,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학교 안에서 구성원들은 천국 선행(善行)점수를 얻듯 CCTV 도덕성을 단련해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CCTV로 볼 수 없는 곳은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된 학교에서 교육의 씨앗인 ‘자유’, ‘의지’, ‘양심’과 같은 미덕은 장차 나무로 자랄 수 없도록 CCTV에 쪼여 말라 비틀어질 것이다.
씨앗도 없는 곳에 앙상한 교과서 지식만 물처럼 뿌려주는 교육의 밭, 학교에서 이제 무엇을 재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