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옛 산동교의 눈물
김성수 취재2부장
2025년 07월 20일(일) 1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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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교는 지금까지 광주에 남은 유일한 전적지로, 2011년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전쟁의 시간을 견디며 지역사에 버텨온 이 다리가 이제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이번엔 총탄도, 폭탄도 아니다. 쏟아진 비와 넘쳐흐른 강물이다.
지난 17일 광주에는 하루 동안 426.4㎜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급격히 불어난 영산강 수위에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동교 하부를 지탱하던 지지대 일부가 토사에 유실됐다. 상판은 휘었고 구조물 일부는 내려앉았다. 북구청은 즉시 출입을 통제하고 정밀 진단과 긴급 복구에 나섰지만, 현장은 여전히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단순한 교량의 파손이 아니다. 산동교는 광주 시민들이 전쟁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다. 붕괴위기의 산동교를 복원하면 기능은 회복될 수 있다. 당장 보수공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더 잦아질 기후위기 속에서 이 다리가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특히 원형 복원이라는 방식으로 간다면, 이번과 같은 집중호우가 반복될 때마다 또다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바로 복원의 딜레마다. 단순한 외형 복원이 아닌, 새로운 조건에 맞는 재설계와 의미 부여 없이는 진짜 회복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앞으로 더 큰 비와 재해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마다 오래된 시설물들은 가장 먼저 흔들릴 것이다. 이제는 자연재해가 과거의 유산을 지워내는 위기의 시대다. 이를 막기 위한 대응이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전쟁의 흔적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시대를 증언한다. 6·25전쟁이라는 비극의 한복판에서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 산동교. 70여 년을 묵묵히 견뎌온 이 다리가, 괴물 폭우 앞에서 또다시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 김성수 취재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