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영화와 사람, 그리고 추억을 담은 영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시네마 천국’
2025년 07월 14일(월) 15:20 |
![]()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시네마 천국’ 포스터.㈜왓챠 제공 |
![]()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시네마 천국’.㈜왓챠 제공 |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시칠리아 섬. 마을 광장에 르네상스 풍의 ‘영화 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이 있다. 한창 말썽을 피울 나이인 장난꾸러기 토토(아역배우 살바토레 카스치오)는 이곳에 가는 것이 젤로 좋다. 영사기사 알프레도(배우필리프 누아레)의 면박에도 영사기 구동기술을 어깨 너머로 익힐 만큼 틈만 나면 영사실에 올라가기 일쑤다. 알프레도는 별 비전 없는 영사 일에 관심 갖는 토토를 말리지만, 결국은 하나씩 영사기술을 가르쳐준다. 어느날 영사기 화재사고로 쓰러져 죽음에 이른 알프레도를 어린 토토는 온 힘을 다하여 가파른 철제계단 아래까지 끌어내린다. 그 덕에 알프레도는 목숨을 구했지만 끝내 실명을 한다. 리모델링한 영화관 ‘신영화천국(Nuovo Cinema Paradiso)’에서는 어린 토토가 영사기 돌리는 일을 정식으로 맡게 된다. 알프레도는 영사실에서 토토의 곁을 지키는 인생친구. 눈을 잃은 알프레도는 ‘더 잘 보이는’ 지혜로운 혜안을 얻고 은연 중 스며드는 그의 멘토링 속에서 토토는 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관의 풍정이다. 영화에 웃고 우는 시칠리아 관객들의 리액션은 풍성하다 못해 허심탄회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특성, 기질, 사람냄새, 1층과 2층 사이에 놓인 경제적 계급 등을 이 공간 안에 모두 담아 한꺼번에 보여주는 듯했다. 우리에게도 1960~70년대 극장에서 클라이맥스에 박수가 절로 나오고 상영 도중에 필름이 끊어지면 휘파람을 불어대며 항의표시를 했던 때가 있었다. 유일한 미디어이자 오락수단이니 만큼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영화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만큼이었을 것이다. 토토처럼 영화가 전부인 소년을 배출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이들에게 영화관은 삶의 축소판이자 무대인 중요한 장소였다. 감독은 이를 정감 넘치게 스캔한다. 스치듯 관찰하면서도 디테일한 조망을 담아내며 서정적 연출로 끌어올린다.
영사실과 객석 사이에 창이 있다. 영사빛을 쏟아내는 이 창구멍은 사자상의 입이다. 역시 이탈리아…. 문화를 지배했던 로마의 흔적은 지중해 인근 어딜 가나 이렇듯 표가 난다. IAPMA(국제종이작가회) 회원들과 베니스의 명성 높은 조각가를 탐방한 적이 있다. 그는 베니스 극장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조각 부문을 맡았다 했다. 극장 안을 조각상으로 현란하게 설치하되 8세기에 건축된 산 마르코 성당과 광장에 깃든 고전주의에 아우러져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대리석으로 조각상을 만드는 정석대로 하기에는 무리였고 천장과 코너에는 떨어뜨릴 위험을 방지해야 해서, 재료를 종이로 쓰고 가면처럼 캐스팅 기법을 사용했다 했다. 고전주의 보전 위한 신박한 포스트모던 고전주의였다.
파라디소 극장에는 영상구 외에도 작은 창이 있다. 관객 토토는 이 창을 통해 알프레도와 소통하고, 영사기사 토토는 이 창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가장 극적인 창은 성당 고해소 창 너머로 첫사랑 엘레나(배우 아그네스 나노)에게 고백하는 신이다. 회고 신에는 토토의 30년 만의 귀향 비행기 창을 매개로 시간이 건너간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그리움, 추억을 담은 영화다. 신부님의 검열 덕에 잘려나간 필름이 불에 타지 않았고, 그 필름을 이어붙이면 ‘키스 장면 퍼레이드’가 된다. 철거 직전의 극장에서 이를 보는 토토는 구석에 처박힌 봉인된 시간이 일시에 부활함을 느낀다. 토르나토레 감독의 노스텔지어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관객은 자신만의 향수에 젖어보기도, 살아온 인생을, 살아갈 인생을 짚어보기도 한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