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장관, 北에 ‘대화 손짓’…아세안 무대서 실용외교 첫선
2025년 07월 12일(토) 09:53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11일 오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5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 암란 모하메드 진 말레이시아 외교부사무차관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외교정책의 방향이 가시화됐다.

이번 회의에는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장관 청문회 미완료로 대신 참석했으며, 북한은 말레이시아와의 단교로 사상 첫 불참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일정은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였다.

이 회의는 미국 제안으로 성사됐으며, 3국은 한반도 정세와 인도태평양 현안, 공급망·AI·에너지 등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박 차관은 “강력한 대북 억제를 유지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한국 정부의 방침”이라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일도 대화 여지를 열어두는 입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국의 발표문은 여전히 비핵화와 사이버범죄 대응에 방점을 두고 있어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공유하려는 지속적 외교가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차관은 아세안+3, EAS, ARF 회의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소통 재개를 위한 정부 노력에 많은 국가가 지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아세안 협력 강화 의지도 강조했다.

이번 외교 행보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해온 ‘국익 중심 실용외교’ 기조의 일환으로, 한국의 3대 전략 시장 중 하나인 아세안의 외교적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불참했다. 2000년 ARF 가입 이후 장관급 회의에 불참한 것은 처음으로,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단절과 최근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한편 러시아를 향한 주변국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갈라 만찬에서 라브로프 장관을 유쾌하게 지목했고, 행사 중간 라브로프를 비추는 장면도 다수 포착됐다. 미국 측 루비오 국무장관과의 짧은 대화 장면도 회자됐다.

이는 지난해 라오스 비엔티안 회의 당시 북한·러시아가 고립됐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다만 박 차관과 라브로프 간의 별도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는 이번 회의를 통해 ‘원칙 있는 유연함’과 ‘실용 중심 외교’라는 두 축을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성수 기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