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강수훈>폭염 생존권, 그늘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
강수훈 광주시의원
2025년 07월 10일(목) 14:56
강수훈 광주시의원.
해마다 여름이 되면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역대급 폭염’이다.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고, 자동차와 아스팔트 위로 뿜어내는 열기로 공기조차 후끈하다. 이제는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가 일상이 되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이나 자택 안에서야 짜증 정도로 그칠 수 있지만, 사회 곳곳에는 이 무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폭염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실내로 이동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땡볕 아래에서 하루 하루를 온전하게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폭염은 선택받은 이들에게는 곧 지나가는 계절이지만, ‘그늘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벼랑 그 자체다.

작년 광주사회서비스원에 대한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쪽방, 달동네, 옥탑방처럼 단열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거주하는 주민이 900여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시 가장자리에 있는 이 곳에는 냉방은 커녕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낮에는 달아오른 지붕이 실내 온도를 40도까지 끌어올리고, 밤에도 그 열기는 빠져나가지 않는다. 쪽방 거주민 상당수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선풍기조차 틀지 못한 채 물수건에 의지하는 노인들이다. 쪽방에 살면서 변변한 수입이 없는 이들에게 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기료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오전 10시가 채 되기도 전에 길 위는 타들어간다. 그 위를 손수레를 끌며 걷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폭염특보가 발령된 날에도, 그들은 거리로 나온다. 폐지를 주워 파는 일이 생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단 몇 푼을 위해, 그들은 매일 생명을 걸고 더위와 싸운다. 폭염은 그들에게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다. 심지어 냉방이 잘 되는 카페나 건물에 잠시 들어갔다가 쫓겨나는 일도 허다하다. 그늘도, 쉼도 허락되지 않는 이 여름의 잔혹함은 오로지 약자의 몫이다.

전통시장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거침없이 돌아가는 대형마트와 달리, 좁고 덥고 습한 시장 골목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이들은 냉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오래된 천막은 땡볕을 막지 못하고, 바닥은 열기를 품은 채 온종일 끓는다. 장사라도 잘 되면 돈 버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장기 불황으로 사람도 없다.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를 단골고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더위와 싸우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은, 사실상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다.

폭염 속 사회적 약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채나 에어컨이 아니다.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생존의 그늘을 만들어줄 책임 있는 정치다. 폭염은 기후 위기에 따른 자연 현상으로 보이지만, 그 피해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철저하게 사회적 문제다. 이제 폭염은 사계절 중 여름에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대의 인권 과제가 되었다.

사람이 숨을 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숨이 더위에 의해 막힐 때조차 그것을 개인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기형적인 이상 기후 속에 참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정치가 앞장서서 폭염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권리, ‘폭염 생존권’을 공론화하고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프랑스는 2003년 폭염으로 1만5000명이 사망한 이후, ‘폭염 대응을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고령자, 1인 가구, 노숙인을 위한 집중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냉방 지원을 제도화했으며, 에너지 복지를 강화했다.

광주광역시는 최근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폭염 속 안전을 위해 보호용품 꾸러미를 제공하고, 대체 일자리 지원 및 안전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폭염 대응을 명분삼아 몇몇 현장을 보여주기 식으로 둘러보고, 격려 사진만 남기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단발적인 지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위 속에서도 매일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이들이 ‘폭염 생존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일시적 조치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권리로 자리잡아 나가야 한다.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한지를 확인하는 기준은 가장 시원한 곳에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가장 더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름을 보내는가에 달려있다. 이 여름, 사회적 약자들이 땀과 숨으로 버티는 자리에 정치가 먼저 그늘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