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대봉감 농가 “폭염에 감 모두 떨어졌어요” 한숨
이상 고온·강수부족에 낙과율 85%
농민, 재해 인정 현실직 지원 요구
벼 도열병 확산·가축 피해 ‘눈덩이’
“정부 선제적 재해 대응체계 구축”
2025년 07월 09일(수) 18:30
9일 오전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대봉감 과수원에서 한 농민이 감 낙과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승우 기자.
“40년동안 농사일을 해왔지만 올해처럼 더위에 감들이 전부 떨어지는 건 처음이제, 올해만이 아니고 내년 농사에도 큰 타격이여.”

때 이른 폭염과 지속된 가뭄으로 전라남도 영암군 대봉감 농가가 초유의 낙과 피해를 입으며 농민들의 절망감이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상기후가 농업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9일 오전 찾은 영암군 금정면의 대봉감 농가. 병해충 방제와 가지 치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뭇가지에는 열매가 드물고, 바닥엔 말라비틀어진 감과 꼭지들이 널려 있었다.

“이맘때면 나무마다 푸른 감이 주렁주렁해야 정상인데, 올해는 나무가 텅 비었어.”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감나무 아래 모여앉아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춘홍(59)씨는 “올해 감 농사로 내년 농사 비용을 충당하려 했는데, 이젠 빚을 내야 하는 지경”이라며 “낙과가 생겨도 어느 정도는 수확이 가능한데, 이번엔 90%가량이 떨어져버렸다”고 말했다.

김대권(67)씨도 “병해충 방제작업은 오전 5시 이전에 시작하지만 9시만 돼도 더위에 손을 놓게 된다”며 “하루치 일도 일주일에 걸쳐야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봉감 재배 농민이 이상 고온과 강수 부족으로 떨어진 과실과 꼭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승우 기자
영암군은 전남 대봉감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이 중 금정면에는 530여 농가가 집중돼 있다. 전체 600㏊규모로 영암군 생산량의 74%를 담당한다.

이들 농가는 지난 봄 저온피해(봄동상해)를 견디고 결실을 기대했지만, 이후 이어진 30도 이상의 이상 고온과 강수 부족으로 인해 극심한 낙과가 발생했다.

정철(60)씨는 “현재 고온 상황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재난에 가깝다”며 “정부가 이번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고,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암군은 전남도를 통해 산림청에 낙과 피해를 재해로 공식 요청했으며, 이후 농약대 지원, 대출금 이자 감면 등의 실질적 대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폭염과 가뭄에 따른 피해는 감에 그치지 않았다.

도내 곳곳에서 벼농사, 밭작물, 축산까지 폭염 피해가 확산 중이다.

벼농사를 짓고 있는 민형식(53)씨는 “벼 이파리가 손상되는 도열병이 예년보다 빨리 번지기 시작했고, 가뭄 탓에 벼 수확량도 줄 것 같다”며 “비가 내려야 하는 장마철인데, 논이 말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7월 초 기준 전남에서 온열질환자 42명이 발생했고, 가축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현재까지 닭·오리·돼지 등 6만여마리가 폭염으로 폐사했으며, 피해액은 10억원을 훌쩍 넘긴다.

특히 농촌 지역은 인력 고령화로 인해 더위에 취약한 작업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장기적인 건강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고령 농민들은 더위에 쓰러지는 등 인명사고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민단체들은 이번 피해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보지 말고, 기후위기로 인한 구조적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지금, 기상청의 조기 경보 시스템, 정부의 선제적 재해 대응 체계, 농작물재해보험의 실질적 보장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현재 피해 접수와 실태 조사를 병행 중이며, 관련 부처와 협조해 재해 인정 및 지원 절차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2025070901000397500013382#정승우 기자 seungwoo.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