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발길이 끊겼어요”…텅 빈 거리, 자영업자의 한숨
광주 중심상권 붕괴 위기 직면
전남대 후문 공실률 38% 달해
충장로도 26%…곳곳 임대 광고
전국 최고 인구 유출률 근본원인
정주여건·일자리 체계 마련 시급
전남대 후문 공실률 38% 달해
충장로도 26%…곳곳 임대 광고
전국 최고 인구 유출률 근본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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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7월 02일(수) 18:37 |
![]()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구시청사거리 일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구시청사거리에서 20년째 분식집을 운영 중인 김모(58)씨는 창문 밖으로 텅 빈 거리를 내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이곳은 매일 밤 청년들로 북적이며 불야성을 이루던 광주의 대표 번화가였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분위기는 빠르게 반전돼갔다. 음악과 웃음소리로 활기를 띠던 거리는 점점 조용해졌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상가들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김씨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세월 24시간 영업을 고수해 왔지만, 상권이 단절되며 새벽 손님이 줄고,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은 커지면서 운영 시간을 대폭 줄이게 됐다. 지금은 오후 9시면 불을 끄고 셔터를 내린다.
김씨는 “예전에는 외지에서도 이곳 거리를 찾아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인근 사무실 직원이나 자영업자들만 드나드는 수준이다”며 “다들 어렵다지만, 이곳만큼 심각한 곳도 드물다. 주변 상인들도 모두 고사 직전이다”고 푸념했다.
주말인 지난달 28일 찾은 동구 충장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광주의 ‘명동’이라 불리며 수십년간 구도심 상권의 중심축을 지켜온 이곳에도 ‘임대 문의’ 문구가 붙은 상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메인 거리인 우다방 일대를 지나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1층 점포마저 문을 닫은 곳이 적지 않았고, 상권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테마거리도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듯 고요하기만 했다.
실제 지난 1분기 기준, 충장로 일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4%에 달했다. 이마저도 상인들과 자치구가 반값 임대료 협약 등 자구책을 펼쳐 3분기 연속 반등한 수치다.
![]()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후문의 한 상가에 폐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윤준명 기자 |
드문드문 문을 연 가게들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손님 없는 가게의 주인들은 TV 화면만 바라보며, 쓰린 속을 태우는 기색이 역력했다.
25년째 중식주점을 운영 중인 박금숙(68)씨는 “알바를 4명이나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코로나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며 “젊은 사람도 줄고, 지역에 돈을 벌 일자리도 없으니, 상권이 살아날 턱이 있느냐”고 토로했다.
신시가지인 서구 상무지구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흥업소가 밀집한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상무중앙로를 따라 이어지는 오피스 밀집 지역의 길목마다 빈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공실률은 12.7%로 여전히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간판만 남은 채 영업을 멈춘 상가,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은 유리창, 사람이 없는 거리는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코로나 당시 받은 긴급대출 상환 압박에 장사가 되지 않아도 ‘버티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후문 상가 곳곳에 임대 안내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윤준명 기자 |
광주는 17개 광역시·도 중 인구 순유출 추이가 가장 가파르다. 2017년 150만명을 넘었던 인구는 지난 5월 기준 139만9880여명으로 줄며, 21년 만에 140만명 선도 무너져 내렸다.
지난 5월 전국에서 순유출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역시 광주였으며, 지난해 빠져나간 인구의 65% 이상이 20~30대 청년층이었다. 결국 인구 유출 속도가 빨라지며 생산연령 인구가 줄고, 이는 곧 수요 위축과 소비 침체로 이어져 상권 유지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신규 주거단지를 따라 소비가 집중되는 ‘풍선 효과’도 작용하고 있다. 실제 최근 상권 수요는 첨단·수완·효천지구 등 신도시형 단지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구매력과 소비 여력이 있는 청년·중장년층조차 지역을 떠나는 추세에서 기존 상권과 신흥 상권 모두 버티기 쉽지 않은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환경 개선이나 테마 조성에 의존하는 ‘상권 활성화’ 정책 방향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단기적 볼거리보다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정주 여건과 일자리, 그리고 세대가 순환하며 소비가 이어질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머지않아 도시 자체가 ‘폐업 정리’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영수 한국부동산연구소장은 “광주는 지금 청년층과 생산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상권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단순한 ‘장사’ 관점이 아니라, 도시의 인구 구조와 정주 여건 전반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지자체 차원의 ‘빈 상가 활용 프로젝트’나 임대료 지원 같은 처방도 병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