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튀르키예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삶` 이야기
고봉수 감독 ‘귤레귤레’. ㈜인디스토리 제공
2025년 06월 16일(월) 10:20
고봉수 감독 ‘귤레귤레’. ㈜인디스토리 제공
고봉수 감독 ‘귤레귤레’ 포스터.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의 타이틀 ‘귤레귤레(Gule-Gule)’는 ‘웃으며 안녕’이라는 튀르키예어다. 필자가 튀르키예를 가고자 했던 것은 열기구 때문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 영국 남부해안도시 본모스에서 열기구를 타보기는 했지만, 튀르키예처럼 온 하늘을 수놓은 열기구는 사진만으로도 장관이었고, 직접 타본 감회는 그보다 훨씬 더 컸다. 생애 최고의 일출을 맞으며 눈을 하늘로 돌려도, 지상으로 돌려도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한…, 가히 여행의 백미였다.

영화 ‘귤레귤레’의 배경은 바로 그곳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다. 영화 ‘스타워즈’시리즈에서 우주의 지형으로 삼을 만큼 자연의 장엄함이 있는 카파도키아는 두어 차례에 걸친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수천만 년 전 형성된 주변의 화산들, 500만년 전의 화산재로 응회암이 만들어졌고, 200만 년 전의 용암이 뒤덮으면서 현무암이 생성, 기후로 인한 침식 및 풍화작용은 가히 신의 작품이 아닐까 싶은 낯설고 괴기하기까지 한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들어냈다. 카파도키아 패키지 투어에 참여한 한국인 관광객들. 자동차부품 무역회사에 다니는 대식(배우 이희준)은 계약을 위해 튀르키예에 왔다가 상사인 팀장 원창(배우 정춘)과 함께다. 일행 중에는 재결합을 염두에 두고 여행 온 이혼부부 병선(배우 신민재)과 정화(배우 서예화)가 있다. 이밖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가이드 이스마일과 브이로그에 빠져 있는 50대 엄마와 20대로 보이는 두 딸이 투어 일행이다.

이들 중 대식과 정화는 대학시절 구애하다 차인 관계. 이들의 운명적 만남과 개인적 문제가 여행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씩 둘씩 드러나고 묵은 갈등을 파헤쳐보는 어려운 일도 감독은 시도한다. 왜냐하면, 친한 사람끼리도 여행하다 갈등을 만들기 십상이라는 경험칙들이 우리 주변에는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감독은 참 낙천적인 사람인가 싶다. (배우자에게 운전을 배우면 부부싸움 각이라는데) 배우자 이주예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만든 점도 그러하거니와 이 영화에도 전작 ‘델타 보이즈’(2016·대본 30%, 애드리브 70%로 만든 작품), ‘빚가리’(2022)처럼 실험성을 과감하게 시험하는 점이 그러하다. 부언하자면, 과감하게 일반인을 캐스팅한 점, 튀르키예 사람들을 그 직업 그대로 기용한 점 등 감독은 즉흥성과 순발력을 십분 활용한다.

그렇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험적 습작의 단계로부터 좀더 나아가 프로페셔널하기를, 치밀한 기획을 바탕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스토리 전개를 위한 대사들이 적절했는가? 상사가 부하직원을 향해, 남편이 아내에게 저렇게 막말하는 것이 괜찮은가? 대사 중에 비속어에 가까운 속어가 좀 많지 않았는가? 감독의 친분으로 기용한 고봉수 사단의 배우들이 적절한 배역으로 보이지 않은 튐 등이 있어서 어나더 클래스, 다른 세계관을 바라보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연기력으로 영화의 균형을 잘 끌어가는 배우 이희준은 몸짓, 표정, 시선 등으로 침묵 속 포커 페이스와 방어기제의 내면연기를 잘 표현해주어, 배우 이희준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생겨났다. 배우 서예화와의 케미스트리도 잘 어우러져서 신비한 카파도키아를 배경 삼아 스토리의 흐름을 잘 이어간 듯하다. OST 두 곡도 어우러짐에 한몫을 했다. 대식과 정화가 낙타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에 최유리의 ‘동그라미’가, 그들이 열기구를 배경으로 지상과 공중에서 회한인 듯 사념에 빠져 있는 동안에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속삭이듯 읊조리며 흐른다.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라는 가사는 대식과 정화의 속내뿐 아니라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지금 나에게 나아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지난날의 나에게, 우리에게 안녕이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매우 적절한 단어 “귤레귤레”라 말하며. 필자는 해외를 가면 독특한 화장실 사인, 독특한 가로등 등 디자인의 특이함을 카메라에 담아오는 편이다. 영화에서는 호텔 옥상에 카펫이 깔려 있고 빈백에 기대어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등장한다. 이 공간을 비추는 가로등이 열기구 모양이라 눈길이 갔다. 요즘 들어 옥상을 캠핑장처럼 꾸미는 게 붐이기도 한데, 이런 튀르키예 식도 이채로울 것 같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