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약속"…학동 참사 4주기 추모식 엄수
광주 동구 광장서, 유가족 등 참석
깊은 슬픔 속 '안전사회' 조성 다짐
2025년 06월 09일(월) 17:54
9일 광주광역시 동구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학동 참사 4주기 추모식’에서 이진의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시간은 흘렀지만, 마르지 않는 눈물과 아물지 않은 상처 속에 참사의 기억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있다. 광주 학동 참사 4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안전사회 조성을 다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광주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는 9일 오후 4시10분 광주광역시 동구청 앞 광장에서 참사 4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유가족과 강기정 광주시장, 임택 동구청장 등 내외빈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삼풍백화점 붕괴, 4·16세월호, 10·29이태원 참사 등 8개 재난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모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도 함께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추모공연에 이어 사고 발생 시간인 4시22분에 맞춰 추모 묵념이 엄숙히 진행됐다. 유가족들은 눈을 감은 채 그날의 아픔을 되새겼고, 일부는 북받치는 슬픔에 연신 눈가를 훔쳤다.

이진의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가 참사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자, 곳곳에서 흐느낌과 숨죽인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대표는 편지를 통해 “어머니가 늘 하시던 ‘숨만 부지런히 쉬면 안 죽고 살아진다’는 말씀이 생각난다”며 “어려운 삶 속에서도 버티며 삼남매를 지켜낸 어머니가 그날 숨을 쉬려 얼마나 애쓰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그 말처럼 억울함과 슬픔을 안고서라도 반드시 살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숨 쉬고 있다”며 “어머니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이 잊히지 않도록 끝까지 그 숨결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9일 광주광역시 동구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학동 참사 4주기 추모식’에서 내빈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광주를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강 시장은 “4년이 흘렀지만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그대로다. 추모 공간조차 마련되지 못했고, 사고 당시의 운림 54번 버스도 여전히 최적의 보존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계속된 참사를 막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의 중심이 되는 광주를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께 유가족협의회는 동구청사 앞에서 지역 정당 관계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시와 원청 업체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에는 참사 재발 방지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협의회는 “학동 참사에 이어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 붕괴 사고를 낸 현산이 서울시의 영업정지 처분에도 가처분과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통해 계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연이은 참사에 대해 마땅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참사 발생 4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를 추모할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고, 사고 버스도 여전히 방치돼 있다”며 “안전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광주시는 조속히 피해 유가족 후속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고 참사의 재발을 막는 데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안전이 기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지난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제4개발구역에서 철거하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시내버스 등을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고 조사 결과, 불법 하도급 구조와 무리한 철거 일정, 관리·감독 부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