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없이 전하는 '오월 광주 정신'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
오는 20~22일 ACC 예술극장 극장1
아시아 최대 블랙박스 극장 활용
음악·오브제·퍼포머 아우른 연출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5·18 조명
2025년 06월 09일(월) 09: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를 오는 20~22일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선보인다. 사진은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 시범공연 모습. ACC 제공
오월 광주 정신을 대사 없이 천지창조 형식으로 풀어낸 획기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5·18을 모티브로 제작한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를 오는 20~22일 ACC 예술극장 극장1에서 선보인다.

‘오브제 연극’은 전통적인 드라마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 대사 없이 오브제와 퍼포머의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의 공연이다.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에서는 이러한 연출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오월 광주’를 이야기하는 시도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낡고, 관념에 의해 덧칠돼 있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언어 대신 이미지와 다양한 신화, 문학 등의 레퍼런스를 층층이 쌓아 제시하며, 기존의 언어를 대체하는 ‘근원적 언어’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예술적 태도는 ‘오월 광주’라는 사건과 만났을 때 더욱 절실하고 유의미한 전략으로 작동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단일한 언어나 논리로 포착되거나 재현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건을 정형화해 재현하기보다는, 이를 감각되도록 만드는 새로운 언어를 찾아, 그 정신이 어디로나 흐르도록 만든다.

공연은 천지창조 7일을 형식적 틀로 차용한다. 창조의 1일부터 7일까지를 각각의 막으로 하고, 종말 1~7일까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마지막 1막을 합쳐 총 8막으로 구성했다. 창세기가 제시하는 창조의 시간에 따라 흘러가며 극장은 다양한 오브제들과 호흡하는 퍼포머들의 움직임으로 채워진다. 이 오브제들은 오월 광주의 희생과 죽음, 파괴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창조와 종말, 생명과 죽음이라는 대립적 요소들의 일치가 존재하는 극장에서 관객들은 그 간극을 배회하며 오월 광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각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 8막은 1~7막을 통해 누적된 오브제들을 극장 밖으로 철수시키는 행위가 역순으로 진행되며 관객은 텅 빈 극장 안에 머물게 된다.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 시범공연 모습. ACC 제공
아울러 이번 공연은 고정된 객석 없이 관객이 극장 공간을 직접 이동하며 관람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아시아 최대 블랙박스 극장인 ACC 예술극장의 블랙박스 구조를 최대한 활용한 방식으로, 관객은 이 고유한 공간성과 결합한 공연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될 전망이다.

이번 공연에는 연극, 무용, 음악 분야의 다양한 출연진이 함께한다. 김용빈, 임영, 정나원, 최도혁 등의 퍼포머와 ACC 시즌 예술인 배우 7명이 오브제와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공연의 음악은 전통음악, 현대음악,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음악이 어우러져 8막의 연극이자 8막의 음악극을 완성한다. 김복만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예술감독과 국악 연주자 김성근, 전남도립국악단 단원 14명이 사물놀이, 현악, 가창 등 다양한 형태로 참여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적극 연출가는 지난해 ACC의 ‘사물의 계보’를 주제로 한 ‘아시아 콘텐츠 공연개발’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사물의 계보’는 사물에 부여된 기존의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려는 시도다. 적극 연출가는 과거 무대에 등장했던 오브제를 새로운 맥락에서 지켜보는 일종의 ‘사물의 계보’를 찾아나가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난해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 시범 공연을 거쳐 올해 본 공연으로 제작된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는 오월 광주의 예술적 확장성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공연 예매는 ACC 누리집(www.acc.go.kr)에서 할 수 있다. 입장료는 전석 2만원이며 13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김상욱 ACC 전당장은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는 연극·음악·미술이 긴밀히 결합된 총체적 예술이며, 오월 광주를 다시 감각하는 시도로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라며 “공감각적인 시 한 편을 읽듯 공연을 관람하며 각자의 해석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 포스터. ACC 제공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