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상연>그때, 보잘 것 없었지만 아름다운
정상연 문화학 박사
2025년 05월 13일(화) 10:06 |
![]() 정상연 문화학 박사 |
적당한 기온과 상쾌한 바람은 해맑게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뒤섞이고, 가벼운 옷차림의 젊은 청춘들의 발걸음은 담벼락의 붉은 장미꽃과 어우러져 도심의 봄날을 한층 멋스럽게 치장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기후 변화로 인해 이 아름다운 계절이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여러 기관에서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1.9℃ 높았지고 5월이면 30℃를 넘나든다고 설레발을 떨었지만, 되려 지금은 감기를 조심해야 할 정도로 조석의 찬 기운은 여전하고, 주말이면 비바람으로 우리의 일상과 생체리듬이 온전치 않다.
이러한 날씨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에 위협이 되는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사회 현상으로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혼란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마저 뒤흔든다. 민생과 경제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안위와 정치적 이득만을 위해 국가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소명마저 내쳐버린 것 같다.
경제와 사회 문제도 만만치 않다. 최근의 국내 경제는 미국 관세 인상과 소비 감소 등 실물 경기가 침체 되고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또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문제도 복지 예산 증가, 세대 간 갈등 등 다양한 불안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SNS와 스마트 폰의 남용은 익명성에 의해 가짜 뉴스,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할 수 있는 교육마저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과 입시제도가 변하고, 100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되면서 학교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들까지 큰 혼란을 겪게 하고 있다
이처럼 내일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현실은 많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과거로 회귀시키고 있다. 우리는 종종 옛 추억을 되새기며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어!”라고 사람 냄새 났던 지난 시간, 보잘 것 없었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 시절에 대한 후회나 자기반성이라기보다는 지금 삶의 본능적 발로인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형성함과 동시에 개인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과거로 회귀하고 추억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발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우리의 삶에 깊이를 더하고, 현재를 더욱 소중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는 오래된 시간이 아닌 오늘의 시간이며 내일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추억은 오늘을 반성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자 내일을 다시 설계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우리가 100년, 200년 전의 예술이나 문학 작품을 읽고, 보고 듣는 이유도 그것이 단순한 예술이나 미학적 감성의 유희라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의 조화와 미적 가치 그리고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추하는 것은 내일을 위한 에너지가 되며 무엇보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각자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자산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온갖 정보를 내어놓고, 기후위기가 생체리듬을 흔들며 건강을 위협하는 이때, 정치적 혼란과 경기 침체로 미래가 보이지 않고 각박해지는 이 시기에 사람 냄새 났던 시간, 보잘 것 없었지만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인간미를 되살리는 시간들을 가져보자. 이것이 ‘과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