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문 열린 옛 적십자병원…"대동정신의 상징"
5·18 45주년, 한달여간 한시개방
'소년이 온다'…오월 창작물 배경
연휴기간 전국서 관람인파 '발길'
'멈춘 공간, 새로운 시작' 전시도
"하루빨리 보존돼 시민들 곁으로"
'소년이 온다'…오월 창작물 배경
연휴기간 전국서 관람인파 '발길'
'멈춘 공간, 새로운 시작' 전시도
"하루빨리 보존돼 시민들 곁으로"
2025년 05월 06일(화) 18:31 |
![]() 6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광주적십자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중앙로비에 전시된 5·18민주화운동 당시 헌혈 및 치료사진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6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1호 ‘옛 광주적십자병원(천변우로 415)’에는 개방 시간에 맞춰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안내 동선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낡은 복도 의자와 진료실이 세월을 머금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건물 외벽 곳곳에는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창문에는 녹슨 창살과 실외기가 오랜 시간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번 개방은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을 맞아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이 지난 3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병원 내부를 한시적으로 공개하기로 하면서 이뤄졌다. 1965년 건립된 해당 병원은 1996년 서남학원 재단에 인수돼 ‘서남대병원’으로 운영되다, 경영 악화로 2014년 문을 닫았다. 이후 공개 매각이 추진되자 사적지 훼손 우려가 제기됐고, 광주시가 2020년 병원 터를 매입했다. 이번 개방에 따라 11년 만에 시민들의 곁으로 잠시 돌아온 셈이다.
안태근(65)씨는 “5월을 맞아 5·18사적지를 돌아보게 됐다. 세월에 바랜 건물의 모습을 보니 민주화 열망이 거셌던 대학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며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장소이기 때문에 이번 개방이 중요하고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1980년 5월, 부상자가 속출하던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여 헌혈에 나서면서 많은 목숨을 살려낸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이곳을 소설 ‘소년이 온다’ 속에서 인간 존엄과 참상의 기억을 품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그려냈고,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의 취재를 도운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바 있다.
관련 창작물의 흥행, 12·3비상계엄 사태 등과 맞물려 5·18민주화운동과 옛 광주적십자병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린이날 연휴 기간 전국 각지에서 연일 수백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등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 6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광주적십자병원을 찾은 시민들이 뒷마당에 전시된 지역 창작그룹 MOIZ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경기 안양에서 온 남미은(45)씨도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연휴를 맞아 민주주의의 산실인 광주에 방문했다”며 “세월의 흔적이 담긴 병원의 모습과 그날의 기록물을 보니, 목숨이 오가던 45년 전 절박한 순간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불의에 맞서 싸웠던 오월영령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진료가 이뤄진 2013년의 모습으로 남은 건물 곳곳에는 ‘멈춘 공간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생명 나눔’과 부상자 치료 모습 등이 담긴 사진·영상물이 전시됐다. 건물 노후화 등 안전상의 문제로 개방 및 전시는 1층과 뒷마당에서만 이뤄지면서, 실제 헌혈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은 출입이 제한됐다.
전시를 기획한 지역 창작그룹 ‘MOIZ’ 관계자는 관람객들에게 상세한 작품 해설을 제공했고, 오후부터는 ‘오월안내해설가’들이 상주하며 병원이 지닌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전달했다.
이준호 MOIZ 대표는 “수년 전부터 ‘시민들이 원하는 적십자병원의 모습’ 등을 주제로 한 공연과 관객참여형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해 왔다”며 “삶과 죽음, 연대의 역사가 깃든 이곳이 시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그 가치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보존하기 위해 관련 단체와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팀(TF)을 꾸려 본격적인 활용 방안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일부 관람객들은 장기간 방치된 5·18 주요 사적지의 모습에 강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조용수(66)씨는 “사회적 연대를 상징하는 적십자병원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추억이 남아있어 감회가 새롭다”면서도 “건물 내외부가 방치된 창고의 모습과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아 있는 이들의 기억은 흐려지고, 건물도 더욱 낡아갈 것이다. 하루빨리 제대로 보존돼 시민들의 품으로 온전히 되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