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한국 교육, 정치 구조, 지역주의가 국가적 위기의 원인”
●중앙대 김누리 교수 전남일보 인터뷰
‘경쟁교육’ 극단적 파시즘으로 귀결
독일, 등수·대입 폐지 민주시민 양성
이재명도 우클릭…한국 정치 ‘우경화·’
“호남, 진보정치 뿌리 될 묘판 역할을”
2025년 05월 06일(화) 17:28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전남일보와 영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 위기의 원인으로 교육 시스템, 정치 구조, 지역주의를 꼽았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까지, 급변하는 대한민국의 정세를 놓고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국 사회와 교육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잘 알려진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광주를 찾아 본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윤석열 내란세력은 파면되지 않았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상황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 교육과 정치 구조, 그리고 지역주의라는 뿌리 깊은 문제가 국가적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먼저 “과연, 한국 교실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으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될까? 아니면 위험한 파시스트가 될까?”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경쟁하고 우열을 나누고 그 다음, 우월한 자가 지배하고 열등한 자가 복종하는 그러한 질서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한국처럼 아이들을 무한 경쟁에 내모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재의 교육 체계는 단지 입시 위주나 학력 중심이지 않냐”며 “이는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파시스트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쟁과 우열, 복종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여기는 한국 교육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을 저격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교육 체계의 문제는 단지 교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포함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 가운데는 민주주의자가 아닌 파시즘적 사고방식을 내면화한 인물이 대다수인데, 이는 경쟁 교육의 직접적인 결과”라며 지난해 벌어진 12·3 계엄과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설명했다. 경쟁 교육은 극단적인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권위주의 성향과 사상을 의미하는 파시즘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파시즘은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교육에서의 해결 방안으로 독일이 선택한 ‘경쟁 제거형 교육 개혁’ 사례를 들었다.

그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세상을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로 봤다. 이와 같은 사고는 결국 파시즘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도 경쟁을 줄이고 다양성과 평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1970년대 독일은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기조 아래 등수와 석차를 폐지했고, 대학 입시마저 없앴다”며 “이는 진정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보가 설 땅이 없는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한국의 양당 체제는 겉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구와 중도 보수 간의 권력 분점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가 파시즘적 권력 집중을 가능하게 한다며 “민주당조차도 실제로는 진보 정당이라 보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보기에 가장 우경화 돼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나라,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정당이 없어 전 세계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나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정치적 진지가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한국 사회의 문제로 지역주의를 꼽았다.

김 교수는 “계엄 선언 이후, 여당인 국민의힘이 여론조사에서 1등을 나타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원인을 지역주의로 진단한다”며 “한국의 지역주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으로 조장한 인위적인 구조”라며 “이후 한국 정치가 지역 기반으로 재편되면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70년대 박정희 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에 따른 정치적 편가르기는 없었다. 광주 사람이 부산에서 국회의원 하는 것, 부산 사람이 전주에 와서 국회의원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세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호남 지역이 이러한 지역주의 구조를 깨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광주와 전남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상징적인 지역이다. 앞으로는 진보 정치의 뿌리가 될 묘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남이 진정한 진보 정당의 토양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한국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다. 호남에서 진정한 진보 정당이 뿌리내리면, 한국의 우경화된 정치 지형에도 균형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들이 모여야 진정한 민주 사회가 된다”며 “우리가 일상에서 경쟁, 우열, 복종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파시즘적 사고다. 내가 일상 속에서 파시스트였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 인식이야말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정유철 기자 yoocheol.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