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어느 정년퇴직자의 하루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2025년 05월 06일(화) 17:19 |
![]()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퇴직하고 인생 2막을 맞이한 나와 같은 연배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각자 나름대로 색깔을 지니고 이모저모 생각과 모양이 특별할 것이다. 한꺼번에 퉁 쳐서 정년퇴직자라고 불리는 것이 좀 부당하고 억울하다. 정년퇴직 후 나는 오히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채워가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몹시 바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지난 가을과 겨울 내내 잠에 원수를 진 것처럼 긴 잠을 잤다. 이른 저녁부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청했다. 부러 눈을 감고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뭉그적거렸다. 문득 하루의 삼분의 일을 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불안하기는커녕, 실컷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오졌다.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내 시간을 이렇게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30대 초반 두 아이를 양육하며 멀리 함평까지 출퇴근하던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나도 그 옆에 누워있고 싶었다. 같이 따스한 체온을 나누며, 가슴에 품고 조용하고 평안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간절함은 언제나 간절한 것으로 남았다. 어느 날은 정해진 출근 버스 시간에 좀 늦어서 허둥지둥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발 균형이 맞지 않았다. 내려다보니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그 난감하고 심란한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의 깊은 상흔을 상쇄시킬 위로(복수?)가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때 난 내 짝짝이 신발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더 빨리 뛰었었다.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서 나 혼자, 혹은 친구들과 무등산 숲 걷기를 하고 있다.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만난다. 산 아래 주차장에서 아침 10시에 만나 편백나무 숲도 걷고, 증심사 산책길이나 동적골 숲길도 걷는다. 보리밥이나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같이 하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진다.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따스한 햇살 맞으며, 천천히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 더덕 냄새 맡아가며 나무들이 뿜어내는 빛의 향연과 에너지를 누리는 것을 늘 꿈꿨다.
느긋하고 한가한 그 시간이 아직은 현실감이 없다. 이것이 꿈인가? 하며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주말이라면 더 늦기 전에 돌아가 일하러 나갈 준비해야 하는 건가? 낡은 걱정에 미간 주름이 잡힌다. 아니, 난 자유인이야. 괜찮아. 아무 걱정 없어~하며 미간의 주름을 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 손을 잡고 환한 웃음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40대 초반, 완도 노화도 섬마을 선생님 시절 갑상선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었다. 초기 암이라 간단하게 처리하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봄방학 기간에 서둘러 수술을 진행시켰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성대가 다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구와 기도를 했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술 자리는 잘 아물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섬 학교라 기간제교사 구하기가 힘들었다. 휴직을 할 수 없어 병가 2개월을 냈다.
2개월의 쉼이 나를 살렸다. 100m 달리기 하듯 달려온 삶이 멈췄다. 그 때 오랜 친구가 다가와 숲 속을 함께 걸어주고, 햇살의 존재를 알려줬다. 집 밥을 해 주고, 낮잠자리를 마련해 줬다. 병이 걸릴 정도로 몸이 힘든 것을 모르고 내달렸던 내게 숲, 햇살, 친구는 신세계였다. 그렇게 아프고 난 더 건강해졌다. 난 이미 햇살, 숲, 걷기 그리고 친구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이 들고 시간이 허락하면 난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가꾸는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중년 남자들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숲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많다.
난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담양 내고향사랑 텃밭에 간다. 3평이지만 두 식구가 먹고 남아 아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그곳은 비닐하우스 안이라 1년 내내 상추 등의 야채를 가꿔 먹을 수 있다. 거기에서 내가 심고 가꾸고 키운 싱싱한 야채를 아침 식탁에 올린다. 건강한 채식이 학교 급식을 대신하고 있다. 학교 급식처럼 맛있고 비용가치 높은 식사가 있을까? 그렇지만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과 같이 맛있게 먹다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체중과 전쟁에서 늘 참패를 당했다. 지금은 내가 이긴다.
텃밭에서 막 뜯어 온 야채는 그 사근사근한 식감과 싱싱한 향이 마트나 장에서 구입해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땅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을 난 느낀다.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은 없지만, 아침 식탁에 야채 샐러드를 올리는 것으로 난 만족한다. 아파트 넓은 창문 옆 식탁에 퍼지는 아침 햇살에 느긋함이 더해지니 난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의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