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수고 참 많으셨습니다.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2025년 02월 25일(화) 17:40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입춘이 무색하다. 또 눈이 왔다. 주말 내내 바람에 춤을 추며 내리는 눈이다. 까만 아스팔트와 하얀 눈밭이 숨바꼭질을 한다. 함박눈에 숨었다가 태양빛에 꼼짝없이 아스팔트가 까맣게 나왔다. 따져보니 최근 몇 년간에 이런 장기간의 설국은 없었지 싶다. 기상 악화의 한 현상일까? 이 나라의 불안한 현실을 감지하신 하늘의 걱정이신 것일까? 아니면 무고한 죽음들에 대한 눈꽃 위로일까?

유난히 많은 눈이 내린 월요일 아침이면 심란했었다. 바닷가 혹은 낙도의 학교로 출근하는 먼 길이 더욱 아득했다. 뱃길은 열렸을까? 관사의 물이 또 얼었을까? 요즘 학교 관사는 많이 개선됐다.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에 온냉방 시설도 갖춰졌으니 살 만해졌다. 하지만 방학 동안 혹은 긴 주말에 비워뒀다가 다시 돌아가 어두운 관사 전등불을 켜면 먼저 코끝에 훅 밀려오는 곰팡이 냄새는 진저리를 치게 한다. 그 공기의 차가움은 나의 체열을 오히려 요구한다. 나 혼자구나 하는 외로움이 폐부를 뚫는다. 겉으로는 그럴싸할 뿐, 최소한의 건축 기술로 쌓아 올리고 거주자의 안녕을 위한 후덕한 배려는 없다고 느껴지는 공공건물의 생태가 여실히 드러나는 낙도의 학교 관사를 떠올리니 다시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학교가 가장 낙후되고 가장 추웠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 넓은 교실 한가운데 난로 한 대 놔두고 장작불로 한기만 없애고 선생의 열정과 학생의 인내로 공기를 덥히던 그 시절도 있었으니, 그것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그건 그렇다고 생각을 돌린다.

더 거칠고 더 험하게 눈이 내리던 20여년 전 어느 겨울 새벽에 함평의 고개를 넘어 출근하던 날이었다. 그야말로 하얗게 눈이 쌓여 빙판이 되어있는 밀재 오르막길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고 있는데 내 승용차가 갈지자를 그리며 제동이 되지 않았다. 중앙 분리선을 넘어 갓길에 세워진 낭떠러지 보호 기둥을 받치고 차가 멈췄다. 반대편에서 차가 왔더라면 어떠했을까?

‘눈이 많이 내리네~ 내일 아침 길이 어쩔지 모르겠네~’ 걱정으로 잠 못 이루던 밤들도 이젠 안녕이다. 졸음에 겨운 눈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던, 하늘의 도우심을 믿고 나서던 길들도 이젠 안녕이다.

지난해 극도로 덥던 여름날이 있었으니, 극도로 추운 겨울날이 오는 것이다. 서러워할 것도 없다.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다. 지금 이렇게 추운 날이 계속되는데 뜨거운 여름이 올까 싶지만, 금방 계절은 변하고 또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늘 망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어리석은 우리이지만 세상은 전진해 나간다. 인생은 돌고 돈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내가 서 있다.

어릴 적엔 이런 날이 올까 했었다. 어리지도 않던 대학생 시절에 큰 언니가 40살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의 삶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정년퇴직자이다.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는 나 자신이 약간 낯설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 그러려니 했던 비감(悲感)은 없다.

이젠 한없이 퍼붓는 설경이 지겹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 주는 이 시대 최고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 안에서 바라다보니, 예전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면 야속하던 하늘에 대한 미운 감정도 눈 녹듯 사라졌다. 현장에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사라졌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길을 종종거리며 어딘가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따뜻하게 추위를 이겨낼 방법을 간구하고 나서는 길이겠지? 얇지만 자체 발열을 하는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기능성 방한복을 착용하고 나섰겠지?

나의 감각에서 절실한 현장감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이 아쉬운가? 헛헛한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현장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살아 돌아오는 자의 감각, 그것은 짜릿하기도 했다. 어떤 순간 학교의 위험하고 살벌한 지경에서 발휘되는 우리의 기지(奇智)는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살아 나갈 방책이었지만, 점점 타자에 대한 혹은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자라나서, 종국엔 그들에 대한 헌신이었다.

2월 말이면 베이비 붐 시대의 교직 정년퇴직자들이 제2인생 무대로 쏟아져 나온다. 수고 참 많으셨다. 축하드린다. 그동안 옭아맸던 체제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해방과 스스로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창조의 기쁨을 힘껏 누리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6개월 선배(?)로서 그들이 살벌하기도 했지만 달콤하기도 했던 현장의 끈을 놓고 어떻게 자체의 힘으로 버텨낼까 걱정이기도 하다. 그 절실한 자리에서 헛헛함이 묻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못된 감정에 휩싸이면, 종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05세 연세에도 건강하게 우리 시대 어르신으로 활약하는, 노(老)철학자 김형석 선배가 1960~70대 후배들에게 하신 말씀을 타산지석 삼아 본다.

65세에서 75세 사이가 인생의 황금기이다. 75세 이상이 인생의 절정기이다. 살아보니, 인생의 가장 절정기는 철없던 30대 청년기가 아니라, 인생의 매운맛, 쓴맛 다 보고 무엇이 참으로 소중한지를 진정 음미할 수 있는 60대 이후이다. 누가 함부로 인생의 노쇠를 논하는가? 인생의 수레바퀴, 인생의 드라마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생하는 것,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진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는다. (김형석의 ‘속삭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