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노영필>내란, 무의식을 파고드는 게임의 논리
노영필 교육평론가
2025년 02월 09일(일) 17:55 |
![]() 노영필 교육평론가 |
똑같은 현상을 두고 생각이 너무 다르다. 한쪽은 다수당의 의회 독재가 만든 내란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쪽은 대통령이 수괴가 되어 일으킨 친위 내란이라고 말한다. 어이없는 대립각이다. 삼권 분립의 민주공화국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대치는 참담한 비극을 만들어 냈다. 갖은 욕설과 폭력으로 법치를 정당화하고, 자발적 동참과 선결재 지지로 강추위 눈보라 속 눈부처가 되어 헌법 수호를 외쳤다.
너무 다른 서로의 입장이다. 어떤 논리가 숨어있을까. 각각의 논리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합리성을 잃은 주장은 궤변을 넘어 주관적 편향을 만든다. 유일한 기준은 헌법이어야 함에도 서로 다르게 법 해석을 유도해 대중을 혼돈시킨다.
놀랍게도 제멋대로 헌법 해석은 파시즘과 맞닿아 있다. 파시즘은 독재적 권위주의를 불러온다. 보수세력은 독재가 익숙해 보인다. 즉 일제 치하,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와 유착된 의리일까. 그 은혜는 일부 개신교회의 광란적 신앙과 결합하여 진화되고 있다. 급기야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된 대통령마저 말과 행동의 근거가 되어 독재적 파시즘을 연출하고 있다.
이번 친위 내란은 수십년 동안 길들여 놓은 세력화된 파시스트들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증명한 결정판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하다. 파시스트 문화가 약화 됐다지만 국가 중심의 잔존하는 파시즘적 사고가 학교 권력과 맞닿아 있다. 지적 분야만 만능인 것처럼 인식하는 입시제도가 대표적인 증거다.
학교는 여전히 파시스트적이다. 교육은 강제된 국가정책의 힘이 지배되고 있는 한 가운데 서 있다. 점수화된 성적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신장된 학생 인권을 누리고 있다지만 학생들의 자치활동은 여전히 통제적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교육활동에 대한 간섭과 개입은 민원이라는 변형적 파시스트 현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공부 논리에 치인 학생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위로받거나 은둔하는 이중생활을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대학 진학을 위해 기를 쓰고 대학 진학이 결정되면 교육과정은 흐지부지된다. 서구권 다른 나라는 대학 입학이 허락된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기가 가장 힘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불균형하고 변형된 교육과정에 희생되는 사이 대다수 아이들은 게임으로 위로받는다. 학교에서 익히지 못한 세상 읽기를 위한 통찰과 논리가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체화된다. 그 현상은 놀랍게도 내란 혐의를 받은 현직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을 두고 젊은이들은 침탈 행동으로 증명하고만 것이다.
교육현장은 20% 상위권을 위해 80%가 동원된다는 아픈 표현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학교, 자신의 인생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탐구하지 못한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게임으로 도피한다면, 이 도피를 심각하게 주목해야 한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애들만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다. 학업에 적응이 된 애들도 어울리는 문화를 위해 게임을 한다. 게임은 그들의 문화다. 기성세대는 권위주의적 가부장 질서 아래 겨우 자연을 보며 싸움하고 놀았다면 요즘 아이들은 삭막한 전투적인 게임으로만 노는 게 문화다. 어른들의 상술이 만든 게임 구조는 마약처럼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경직시킨다.
그동안 교육은 그들이 노출된 게임 세계의 현실을 심각하게 주목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게임은 계급적 질서로 유지된다. 혐오를 조장하고 계급적 사고를 정당화시켜 준다. 거기다 독재적 파시즘 논리가 키워진다는 게 문제다. 게임의 세계를 통해 반공주의, 반지성주의, 반민주 전체주의가 밑도 끝도 없이 중국을 혐오하는 문화와 연결해 증오심이 증폭된다.
계급주의는 우열을 내면화해 체념하게 만들고, 혐오적 남녀 차별을 조장하고, 체념의 논리를 통해 나쁜 세력화를 조장한 셈이다. 청소년 게임의 문제점을 과거에는 죽이고 깨고 파괴하는 폭력성 중심으로 이해했다면 고전적 이해다.
청소년의 무의식까지 지배된 내란의 시대다. 그 내란이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있다. 게임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비판적 사고가 형성되지 않은 한 내란은 종식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으로는 중과부적임을 내란 사태를 통해 목격했다. 물론 내란범 탄핵을 지지하기 위해 상경까지 하는 젊은 세대의 노력을 희화해 깎아내릴 수는 없다.
게임이 만들어준 망상성, 폭력성, 거짓말, 파시즘적 논리가 교육의 의제로 다뤄지지 않으면 그들의 숭고함도 우리 사회의 민주정과 공화정도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게임이 아닌 학교에서 논리적 추론과 철학적 사유로 비판적 사고를 익힐 때 희망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