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다솔>자카르타에서 배워온 것들
양다솔 독립기획자
2025년 02월 06일(목) 17:41
지난해 길고 긴 더위가 물러갈 무렵,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와 ‘자카르타 비엔날레(Jakarta biennale)’를 관람하기 위해 다시 더위로 향했다. 약 7시간의 비행을 버티며 도착한 자카르타의 첫인상은 듣던 대로 덥고 습한 공기였지만, 처음 도착한 이국 땅에서 어떤 예술이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감은 그 더위를 잊게 만들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한 지난해 10월 3일부터 6일 사이에는 다양한 예술 축제들과 이를 염두하며 개최된 다양한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 필자에게 인상 깊었던 ‘아트 자카르타’와 ‘자카르타 비엔날레’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뤄보고자 한다.

아트페어란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일종의 시장으로,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아트페어가 매년 개최된다. 매년 아트페어를 경험해온 필자는 한국의 아트페어와 ‘아트 자카르타’가 어떻게 다른가를 중점을 두고 행사에 참여하고자 했다.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아트 자카르타는 지난해 14회를 맞이한 역사가 깊은 아트페어로, 감독을 맡은 톰 탄디오(Tom Tandio)가 ‘동남아시아를 선도하는 아트페어’라는 비전 아래 그 규모를 매년 키워가고 있다.

무엇보다 아트 자카르타와 한국의 차이는 행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인데, 특기할 점은 애써 그 차이를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필자는 예술 축제라고 일컬어지는 축제들이 사실은 축제를 표방할 뿐, 향유자들이 어느 정도 배제되어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에 반해 아트 자카르타는 말 그대로 예술을 경유한 축제였고, 행사의 목적 실행 이외에 어느 누구라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체험이나 참여와 같은 장치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기업 부스인 Bibit과 Roca의 부스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먼저 Bibit은 전시장 중앙에 크게 마련된 부스에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대신 전시 기간 뜨개질이라는 공동행위를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완성되기 전까지 어떤 작품을 구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구든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욕실 관련 물품을 만드는 기업인 Roca는 전시장에 투명한 욕실을 설치했다. 누구나 샤워할 때 노래를 부른다는 아이디어를 채택한 기업은 욕실 안에 노래방을 구현해 그 안에서 누구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만들었다. 욕실 내부로 들어간 인원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욕실 외부에서 이를 바라보는 인원은 내부의 인원을 신나게 바라본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욕실 노래방을 체험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이 행사가 축제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이 밖에도 작가를 알고자 하는 컬렉터들의 열기와 각 부스를 지키고 있던 갤러리스트들의 환대 등으로 처음 느낀 활기 넘친 아트페어는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트페어를 뒤로하고 방문한 자카르타 비엔날레는 복합문화시설인 이스마일 마르주키 공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광장을 지나야 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자리가 없어도 개의치 않고 바닥에 앉았으며, 밥을 나눠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아주 일상적인 모습들이었지만 긴 광장을 걸어가는 내내 고개를 자꾸 뒤로 돌리며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비엔날레의 규모는 작았지만 작품 앞에 선 작가와 관객이 그 자리에서 서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더러는 작품을 일부 수정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의견을 나누고, 그것을 보완해 나가는 것. 이 지점에서 ‘15회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fifteen)’의 감독을 맡은 루앙루파(Ruangrupa)가 전시 개념으로 내세운 ‘룸붕(Lumbung)’을 떠올렸다. 공동 헛간의 뜻을 지닌 룸붕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인도네시아의 사회문화적 맥락이기도, 연대와 사회적 참여 등을 중시하는 루앙루파의 예술적 맥락이기도 하다. 필자가 자카르타에서 경험한 것들은 결국 예술은 사람과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었고, ‘나’를 넘어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자카르타에서 배워온 것들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