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바나나 공화국
김성수 논설위원
2025년 01월 21일(화) 17:40
‘바나나 공화국(Banna Republic).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성질을 빗댄 말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바나나 따위의 한정된 농산물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부패한 독재자와 그 수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를 얕잡아 쓰고 있다. ‘마지막 잎새’로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 오 헨리(O Henry)가 은행에 근무하다가 공금을 횡령하고 남미로 도망쳤을 때의 경험을 쓴 단편집 ‘양배추와 임금님(Cabbage and King)’에서 처음 쓴 용어다.

‘바나나 공화국’의 대표 사례로는 중미의 엘살바도르, 그레나다,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이다. 오 헨리가 도피했던 온두라스도 마찬가지였다. 1838년 독립하고 반세기 뒤 오 헨리가 방문할 때까지 수백 건의 쿠데타와 정권 교체를 겪었다.

부패나 소요사태로 인해 정국이 불안한 국가인 ‘바나나 공화국’은 비민주적 후진국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독립선언 이후 245년간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의사당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전 세계 TV가 생중계했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조 바이든(Joe Biden) 당선자의 차기 대통령 당선 확정을 위한 상하원 회의가 열리는 의회에 난입해 유혈 사태를 빚어졌다. 이 사태로 경찰관 140여 명이 다쳤고 5명은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1600여 명이 기소됐는데 이 중 127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700여 명은 경찰 폭행이나 무기 사용 등 중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엄중 처벌을 받았다. 비민주적 후진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였고, 오랜 삼권분립의 전통과,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문화의 상징인 미국식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여기가 바나나 공화국이냐”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런데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 첫날 당시 유죄 판결을 받은 일부 시위대를 사면하겠다고 밝혀 또다시 갈등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사례는 윤석열 대통령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발생했다. 일명 ‘바나나 공화국’에서나 일어날 일들이다. 이뿐이던가. 지난 19일엔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난입·폭력 사태로 중상 7명을 포함해 경찰관 42명이 다쳤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바닥에 쓰러진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흔들리고 있는 공권력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꾀하고 가짜 뉴스와 폭동을 선동하는 세력과 결탁해 헌법질서까지 어지럽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후진정치에 국격이 하루아침에 ‘바나나 공화국’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성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