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한겨울 펼쳐진 난장, 혁명의 ‘내력’을 주목하다
430. 떼창혁명
2025년 01월 16일(목) 18:20 |
![]() 지난달 2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즉각퇴진·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의 7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과 손팻말,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
떼창혁명, 빛고을에서 K-culture까지
지금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 음식과 BTS를 필두로 하는 K-pop일 것이다. 통칭해 K-컬처라고 한다. 음식뿐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 장르가 대표적 이미지로 떠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세기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 따위의 이미지로 한국이 소개된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이를 분석하거나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게 한국 미학 연구랄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관한 연구라고 해도 좋겠다. 물론 추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중에서 내가 전공 삼아 연구해 온 게 남도의 아름다움에 관한 연구다. 나는 남도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고, 장차 동아시아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본 지면을 통해 판소리와 우리 소리를 말하고, 우리 방식으로 그려진 민화를 이야기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역사로서의 설화(신화, 전설, 민담)를 이야기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담준론을 넘어, 민중의 몸짓과 언어, 생활 태도를 들어 그 안에 들어있는 오래된 생각과 철학을 끄집어내는 것이 요체다. 고매한 유학자나 철학자의 언설이 아니라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았던 민중들의 눈짓과 몸짓, 언어와 풍속 안에 스민 결 고운 생각들이 사실은 진정한 철학이요 종교이며 학문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랜 세월 투쟁과 교섭을 통해 쌓아온 시대정신이지 않겠는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주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유훈을 좌우명처럼 여기고 사는 이유도 그러하다. 명분과 진리를 탐구하고 섭리를 분석하는 현학을 늘 화두 삼아 정진하지만, 현실을 진단하고 설계하는 상인의 감각을 놓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즈음의 흐름을 떼춤의 법고창신 곧 떼창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앞사람을 따라 발을 구르며 떼로 춤추던 마한 소도의 의례로부터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떨쳐 일어나 노래했던 동학과 5·18의 빛고을까지, 아니 세월호의 촛불이 횃불이 되고 응원봉이 되었던 저간의 내력까지 상고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도인문학팁
중구삭금(衆口鑠金), 향가 해가(海歌)와 마한 소도(蘇塗)의 떼창혁명
중구삭금은 뭇 사람의 말이 쇠도 녹인다는 뜻으로 여론의 힘을 얘기할 때 주로 인용하는 사자성어다. 초나라 굴원의 천문구장(天問九章) 석송(惜誦)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향가 ‘해가(海歌)’의 배경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강릉 태수 순정공이 아내와 함께 부임 길에 올랐다. 도중에 바다의 용이 나타나 아내 수로부인을 물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순정공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여러 사람이 하는 떼창이 쇠를 녹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몽둥이로 언덕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게 하십시오. 순정공이 그 말대로 노래를 짓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치니 놀란 용이 수로부인을 내놓았다.” 나는 이 풍경을 마한의 소도에서 행해지던 탁무(鐸舞)와 연결해 늘 상상하곤 한다. 노래도 춤도 여럿이 불러야 힘이 커진다. 몽둥이로 언덕을 치니 하늘과 땅과 바다가 공명했다. 떼창의 힘이 어디 동해의 용왕에만 미치겠는가. 이무기에도 못 미쳤던 계엄 우두머리 윤석열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장차 나랏일을 하려는 그 어떤 이들이라도 이같은 떼창혁명을 이길 수는 없다. 응원봉을 몽둥이 삼아 언덕을 두드리며 떼창을 하고 떼춤을 추는데 그 어떤 쇠라고 녹아나지 않겠는가. 향가의 해가와 마한의 소도까지 소급해 상상할 수 있는 떼창혁명의 현장을 Z세대의 재기발랄한 K-culture,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확인하는 즐거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