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당산제 펼쳐지는 방죽골… 흥겨운 농악의 몸부림
●곡성 죽동마을
‘임진왜란 때 쌓은 방죽’ 지명 유래
마을 자랑 ‘죽동농악’… 판굿 전승
보름 전후 당산제·달집태우기 등도
예능보유자 박대업 농악 맥 이어가
‘임진왜란 때 쌓은 방죽’ 지명 유래
마을 자랑 ‘죽동농악’… 판굿 전승
보름 전후 당산제·달집태우기 등도
예능보유자 박대업 농악 맥 이어가
2024년 12월 26일(목) 17:02 |
죽동농악 시연. 농악은 죽동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다. 마을사람들은 늘 농악과 함께했고, 농악은 마을문화가 됐다. |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와 정자. 여름날엔 마을주민들에 그늘 쉼터를 내어준다. |
구심점이 되는 노래도 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촛불집회에선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노래와 함께 집회가 시작되고 또 끝난다.
농촌 마을의 구심점은 대개 이장이 된다. ‘소녀시대’의 노래 대신 흥겨운 농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당산제도, 지신밟기도 농악과 함께 시작한다. 이장의 말과 행동에 따라 주민의 마음도 한곳으로 모은다. 예나 지금이나 농악은 농촌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놀이다.
곡성 죽동마을은 해마다 농악을 하며 당산제를 지낸다. 굿판도 펼친다. 농사철에 김매기를 할 때면 만드리굿을 하고, 가뭄 땐 기우제를 지냈다. 마을 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도 굿판을 벌여 흥을 돋운다.
죽동마을은 동악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악산 서당골을 뒷산으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쌓은 큰 방죽이 있는 곳이라고 ‘방죽골’ ‘방죽고을’ ‘방죽동(防竹洞)’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방’자를 빼 ‘죽동(竹洞)’이 됐다. 현재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주업은 농사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에 속한다.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 죽동농악이다. 마을사람들은 늘 농악과 함께했고, 농악은 마을문화가 됐다. 농악은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많이 펼친다. 당산제를 모시고, 달집태우기를 한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당밟기도 한다.
당산굿은 마을을 지켜준 당산할머니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놀이다. 달집태우기는 대나무를 겹겹이 둘러쌓은 달집을 만들고, 달 뜨는 시간에 맞춰 고사를 지내며 달집을 태우는 놀이다. 달집태우기는 마을의 액운을 막고, 농사의 풍작과 흉작도 점치는 세시풍속 가운데 하나다. 마당밟기도 매한가지다.
농사철에는 만드리(김매기)를 하며 큰 깃발을 세웠다. ‘덕석기’다. 죽동마을엔 1934년과 1936년 만들어진 가로 450㎝, 세로 370㎝의 덕석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이 갖고 있다.
죽동마을은 마을굿에서 시작해 인근 마을에 걸궁을 하는 들당산과 날당산굿, 그리고 판굿까지 전체를 전승하고 있다. 판굿은 문굿, 앞굿, 뒷굿 등 여러 굿과 함께 쇠가락, 상모짓, 소리, 춤 등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상쇠가 아군 대장이 되고, 대포수가 적군 대장이 돼 전쟁놀이를 하며 적군 대장을 처형하는 굿으로 이어진다. 의례와 놀이, 연희가 한데 어우러져 신명이 드러나는 전통문화예술이다.
죽동농악은 고인이 된 기창수(1895∼1985), 강순동(1908∼1985)에 이어 마을주민 박대업(1947∼)씨가 대를 잇고 있다. 박씨는 2002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전라좌도농악의 맥을 잇는 곡성죽동농악은 1998년 남도문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듬해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 전라남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여기서 꽹과리 몇 번만 두드려 봐. 금세 사람들 다 나오고 모여들 것이그만. 놀이판 벌렸는갑다 허고.”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이다. 그만큼 마을주민과 농악은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인다.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한 농악 연수, 초등학생 대상 농악전승학교 운영, 장구 만들기 체험, 찾아가는 농악 공연 등은 죽동농악 활성화를 위한 몸부림이다.
죽동마을의 또 하나 구심점은 당산나무다. 당산나무는 마을 입구와 마을회관 앞에 있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당산나무는 수령 300년 된 굴참나무다. 키 15m, 둘레 2m가량 된다. 마을의 안녕과 함께 사람들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정신적 지주다.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는 정자와 어우러져 있다. 수령 300년, 키 14m, 둘레 5m 남짓 된다. 한여름에 그늘을 내어주며 마을사람들의 쉼터와 소통공간이 되는 정자목이다. 죽동농악전수교육관도 있다.
마을회관 옆에 세워진 서당 건립 공적비도 눈길을 끈다. 1800년대 말 김재준(1851∼1910) 훈장이 마을주민 교육을 위해 서당을 지은 곳이다. 학교가 생기면서 서당은 마을회관으로 쓰였다. 건물과 땅이 마을에 희사됐고, 2008년 현대식 회관으로 다시 지어졌다.
자신의 모든 재산인 땅과 집을 마을에 기증한 정옥님 선행비도 나란히 있다. 정옥님(1947∼2016)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갖은 고난을 겪으며 살았다. 남다른 애향심으로 마을 일에도 앞장섰다. 일찍 몹쓸 병에 걸려 병마와 싸우다 유명을 달리했다.
죽동저수지도 마을의 자랑이다. 여름엔 저수지 가득 연꽃이 핀다. 수변에 체육시설도 많이 설치됐다. 읍내 사람들이 걷기 운동하려고 많이 찾는다. 한쪽에 곡성군 참전용사기념탑도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 참가한 참전유공자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굴참나무와 소나무 한데 어우러진 작은 정자도 멋스럽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