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반장 김건희, 부반장 윤석열, 선도부장 한동훈, 스승 천공….
아에몽 감독 ‘퍼스트 레이디’
2024년 12월 16일(월) 17:37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이뤄지는 14일 제주시청 주차장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그려진 천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아에몽 감독 ‘퍼스트 레이디’ 포스터. 영화사 키노㈜ 제공
‘VIP2’, ‘진짜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던 윤석열 탄핵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 관한 숱한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레이디’가 12월 12일 개봉됐다. 시의적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지난 12월 3일 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 계엄’. 4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국회는 비상계엄 조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비상계엄 해제요구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희대의 돌발성 ‘계엄 과 계엄해제’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계인들의 반응 역시 놀라움이었는데, 기억 나는 해외 인터뷰가 있었다. “계엄의 배경에는 스캔들 많은 퍼스트 레이디의 그림자가 짐작된다….”

국가적 위기 앞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주권자인 국민이 즉각적으로 나섰다. ‘self coup’을 주도한 위법한 대통령에 대한 엄중한 ‘탄핵’ 요구였다. 수많은 인파가 연일 국회 앞에 몰려들었고 필자의 지인 가운데 광주 사람들 다수가 서울 여의도를 향해 달려가는 정국이었다. 영화는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미리 내다본 양, 대통령실의 실권자로 알려진 퍼스트 레이디의 실체를 낱낱이보여주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위에 김건희 여사, 그 위에 천공 법사’라는 전대미문의 공식을 루머가 아닌 실체라며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었다.

선거 당시 크게 논란이 됐던 부인 김건희의 ‘학력·경력 위조, 논문 표절’을 두고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을 빛내고 싶어서”라는 변명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하고 넘겼다. 그렇지만 디올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는, 퍼스트 레이디가 김영란법을 무시하듯 크고 작은 선물의 전달이 비서실 통해 가능하다는 데 우선 놀라웠고 디올백을 전달한 당시에는 면담까지 하는 것을 보고 그 도덕성에 놀라웠다고 증언한다. 최 목사는 자신의 면담순서 이후의 면담자가 선물이 포장된 백을 갖고서 대기하는 모습 등을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5년 안에 통일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그녀의 논리 뒤에 천공법사의 주술적 예언과 동일함도 언급했다. 화면은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당시에 주고 받은 메시지 및 통화내용도 명백하게보여주고 있으며,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은 권력에 기댄 탐욕을 여실히 증빙한다.

이 영화의 투자처인 서울의 소리 대표의 논평도 가감없이 싣고 있다. 천공 법사 및 무속인들의 증언 역시 세간에 돌던 주술정치 소문에 대한 빼박(?)이었다. 압권은,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7시간 넘게 통화한 내용이다. ‘누나’, ‘동생’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여러 차례 이루어진 통화내용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져 영화의 흐름을 이어갈 만큼이다. 특히, “내가 정권을 잡으면, 거기는 완전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육성은 ‘대통령 위에 여사’라는 공식을 입증하고 있다. 퍼스트 레이디가 갖춰야 할 덕목에서 벗어나 있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영화는 이를 해학적으로 풀고 있었다. ‘반장 김건희, 부반장 윤석열, 선도부장 한동훈, 스승 천공….’우리가 띄엄띄엄 알고 있던 정치적 이슈들, 그 한가운데 권력을 사유화하는 퍼스트레이디의 존재가 얼마나 위협적이며 국가적 위험 요소인지를 이 영화는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수록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국민이다. 12월 14일 박찬대 의원은 탄핵소추안 제안 연설에 이렇게 말했다. “한강 작가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구할 수 있는가’.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국회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없었다면, 국회 담장을 뛰어넘은 국회의원의 숫자가 모자랐다면, 지휘관들과 군인들이 부당한 명령을 적극 따랐더라면, 지금 대한민국은 80년 5월의 광주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습니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