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노영필>아이들에게 조롱당하는 어른들 세상
노영필 교육평론가
2024년 12월 15일(일) 17:57 |
노영필 교육평론가 |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당찬 목소리를 외친 청소년들의 주장을 접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12.3 불법 계엄을 저지른 대통령 탄핵을 표결하는 본회의장에서 도망치는 국회의원들의 뒷모습과 클로즈업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이 시대 어른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학생들이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에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왜 군인들이 우리 국민에게 총을 드는 장면을 봐야 합니까?”
“지금 국민의 대표자들에게 총을 겨누고도 나의 권한을 활용했다는 내란죄 피의자를 지키는 게 옳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의원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이런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을 배신하지 말자고 뜻을 모을 게 아니라 진짜 배신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바로 국민들 아닙니까!”
교과서로만 배웠을 계엄에 대한 학생들의 현실 인식은 예리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계엄은 무차별 폭행의 전시체제로 사회를 둔갑시킨다는 것을. 계엄은 가장 포악한 국가폭력을 자행한다는 것을. 44년 전, 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이 인권과 평화, 정의와 공정을 무너뜨린 폭력이었음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은 어른들을 더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과 다른 어른들이 미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열거했습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주권을 위임했을 뿐이지 거꾸로 국민을 죽이는 내란수괴를 뽑지 않았다.”고. 내란을 편드는 국회의원들은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싹 잡아들여”라는 내란수괴와 한통속임을.
어른들이 어처구니없는 왕정국가를 만들고 민주국가라고 거짓 교육을 늘어놓다 한순간 들키고 만 셈입니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어른들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로 둘러대 각색하였습니다. 헌법을 휴지 조각 만든 어른들은 온통 거짓말쟁이가 된 것입니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닙니다. 그대들의 지각없는 친구들보다 더 나쁘게 자란 어른들이 넘치는 게 사실입니다. 남과 갈등이 생겨 상대를 이길 수 없으면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이들에게 겹쳐 보입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주먹질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막가파처럼 특수부대를 동원했습니다. 대통령이 딱 그 수준입니다. 정치인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총을 든 특수부대 군인들을 앞세웠다는 그대들의 지적은 날카롭습니다.
망상장애와 가상현실에 빠진 어른들에게 그대들의 예리한 문제제기가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눴다는 점이 가장 큰 잘못‘이라는 지적 앞에 민주주의의 개념완성을 보아 안심입니다. 시위가 응원봉이 되고 시위가 민주주의의 콘서트가 되는 성숙미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대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어른들에게 진짜 어른이 된 민주시민입니다.
그대들의 신박함과 달리 구태의연한 채 대화와 타협을 할줄 모르고 억지 주장만 늘어놓은 어른들을 향한 날카로운 하이킥입니다. 대화와 설득의 정치는 사라지고 조작과 겁박만 난무하는 정치 현실이니 어른들의 쫄보문화가 더 졸렬해지지 않습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대화할 줄 모른다는 것이 이번 사태 앞에 어른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점입니다. “국회가 적입니까!” 네 편과 내 편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을 넘어 대화 요령도 모른 채 싸움 제일 잘하는 특임부대를 동원합니다. 그리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마비시켜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면 됩니까.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대들이 싸우더라도 말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제 그대들도 상대와 말이 안 통하면 무기를 들고 싸움질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대들의 기발한 패러디가 미래의 희망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연인 앞에 계엄까지 해봤어.”라는 부끄러운 패러디가 아니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당찬 목소리 때문입니다. 계엄령은 소꼽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잇속을 위해 소꼽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노벨상의 작가 한강의 이야기가 귓전을 울립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세계인의 가슴에 보통명사로 남은 계엄에 맞섰던 광주, 이제 광주정신은 정의로운 피를 이어주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거듭나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