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한 시대의 대안과 처방”
425. 김지하를 다시 본다
2024년 12월 12일(목) 18:08
‘김지하를 다시 본다’의 표지.
지난 2023년 5월 6일~7일 김지하 시인 추모 1주기에 열린 기념 학술회의 자료가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채희완 교수의 발제를 받아 토론한 졸고도 함께 실렸다. 석학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큰 영광이다. 내 토론의 일부를 여기 오려 붙여 출판을 기념한다. 목포 나들목 건너편에 용당리가 있다. 김지하의 초기 시, 어쩌면 그의 생애 첫 번째 시상이었을지도 모를 ‘용당리에서’를 떠올린다. 김선태가 쓴 ‘김지하의 첫 시집 황토와 목포’에 의하면, 4·19혁명 참가 후 고향 목포로 숨어들어 항만과 도로공사판 인부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던 1961년경 쓴 시다. 나는 더 이전 일종의 선험에서 비롯된 노래라고 생각한다. ‘용당리에서’를 듣는다. “용당리에서의 나의 죽음은/ 출렁이는 가래에 묻어올까, 묻어오는/ 소금기 바람 속을/ 돌 속에서 흐느적거리고 부두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 죽어 있다/ 그러나 나의 죽음/ 죽음은 어디에(중략)/ 단 한 번/ 짤막한 기침 소리 단 한 번/ 그러나 용당리에서의 나의 죽음은/ 침묵의 손수건에 묻어올까/ 난파와 기나긴 노동의 부두에서 가마니 속에/ 노동자가 한 사람 죽어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작은 손이 들리고/ 물 위에서 작고 흰 손이 자꾸만/ 나를 부르고” 김지하가 목격한(혹은 선험적으로 알아차린) 용당리 부두와 목포 선창에 널브러진, 거적때기에 덮여있던 주검들을 생각한다. 갱번(남도사람들이 일컫는 바다의 총칭)해안 포래(파래)밭에 떠밀린 시신과 표류와 황혼의 햇살을 받아 작열하는 흰빛을 생각한다. 동학도당 증조부의 고향 암태도에서 할아버지의 거처 법성포로 다시 목포에 이르는 갯벌의 실핏줄 같은 물골을 생각한다. 김지하의 유년이 겹겹이 포개지고 갈라진 옛 부두에서 조용필의 노래 ‘창밖의 여자’를 듣는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네~” 조용필의 첫사랑 노래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에 생각이 머무른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갱번은 눈부시게 빛난다. 만조기의 자글자글한 윤슬이 그러하며 간조기의 쩍쩍 벌어지는 갯벌이 그러하다. 모두 있음과 없음을 교직하는 간만조의 물비늘들이다. 갈포래(갈파래)에 얹혀진 시신은 흰빛으로 빛나고 있었을 터, 하지만 김지하의 사상편력이나 생애 내력으로 보면 이 주검들은 분명 일반 수사자(水死者)가 아니었을 것이다. 물 위에서 물 밖에서 죽임당한 주검들이었을 테니까.



김지하의 ‘흰그늘’, 한국 미학의 네오·르네상스

김지하의 미학 정체를 딱 한 마디로 하자면, ‘흰그늘’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남도 사람들의 웅숭깊은 미학적 전거가 ‘귄’인 것과 같다. 1963년 ‘목포문학’에 ‘저녁 이야기’를 발표할 때는 之夏라는 이름을 썼다. 이후 필명을 地下로 쓰다가 芝河로 굳어진다. 김영일이라는 본명을 썼던 시기가 1991년 ‘죽음의 굿판’ 필화사건에 못지않게 그의 삶에 중요한 기점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2000년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가 김영일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다. 김지하는 옛 이름이라고 괄호 안에 가두어둔다. 지하를 벗어던지고 영일이라는 본명을 쓰고자 했을 때가 수구초심 회향의 중요한 기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의 10여년 속에 우여곡절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에게 강요됐던 상극의 삶은 회향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생각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 다만 괄호 안에 가두어두었던(이게 진심이라고 나는 보는데) 지하라는 이름이 다시 괄호를 벗어던진다. 김지하는 ‘시김새’(2011)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15세기 피렌체와 베네치아 르네쌍스의 핵심미학, 그 브렌드·토오치는 ‘어둑어둑한 저녁 강물 속에서 문득 빛나는 희끄무레한 한 물빛’(야코브·브룩하르트)이었다. 한국의 네오·르네상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아닌가? 허허허허.” 그이의 말씀대로다. 처절한 개인적 경험과 찢어진 나라의 경험이 재구성한 흰그늘, 또 다른 호명이었던 시김새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식학(移植學)이 판치는 세상에서, 홀연히 입말 이야기로 시와 사(辭)를 짓고 판소리와 민요의 시김새를 끄집어낸 김지하가 계셨고, 또 그 이야기의 본디 정체일 소리를 얹은 임진택과 몸으로 비틀어 말하는 채희완 등이 계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왜 이분들이 허락도 없이 보잘것없는 이 땔나무꾼의 흉중에 들어와 교란하시는가를 상고하는 중이다. 이것이 흩음이 아니라 신명의 모음임을 알아차리게 될 날을 모름지기 기다린다. 남방의 기운을 품고 북방 가까운 원주에 머리를 눕히니 흰빛을 품은 검은 그늘이요 해를 품은 달이 되셨다. 산알이 되고 앵산이 되고 부용이 되었다. 얼척(어처구니)없던 세상에서 한낮에도 등불 켜고 사람 찾던 사람 김지하를 사모한다. 오늘 김지하의 ‘흰그늘’을 받고 채희완의 정리된 생각을 받았으니, 나는 또다시 다음 단계의 생각을 꾸린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옛 부두 땅끝 용당리를 찾았다. 초의의 언설대로 연하(煙霞)가 난몰(難沒)하는 옛 인연의 터에 무심히 앉아 조용필의 노래를 마저 듣는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남도인문학팁

‘김지하를 다시 본다’

‘김지하를 다시 본다’는 지난해 5월 6일~7일 김지하 추모 1주기에 열린 ‘김지하 추모 학술 심포지엄’ 토론 자료를 정리하고, 다시 꼭 읽어야 할 김지하의 글을 모아 만든 105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1부에는 염무웅, 이부영, 유홍준, 임진택, 임동확, 김사인, 홍용희, 정지창, 채희완, 심광현 등 30여명이 ‘김지하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이라는 큰 주제 아래 ‘김지하의 문학과 예술, 미학’, ‘김지하의 그림과 글씨’, ‘민주화운동과 김지하’,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으로 나누어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한 후 정리한 내용과 종합토론을 한 내용을 실었다. 2부에는 ‘김지하가 남긴 글과 생각-생명의 길·개벽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김지하가 남긴 수많은 글 중에서 꼭 다시 읽어봐야 할 글을 골라 실었다. 암울한 시대에 수많은 젊은이를 위로하고 힘주었던 글 ‘양심선언’, ‘나는 무죄이다’. 로터스상 수상 연설인 ‘창조적 통일을 위하여’,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등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수십 년 앞서서 말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 ‘개벽과 생명운동’, 김지하가 자신의 문학에 대해 쓴 ‘깊이 잠든 이끼의 샘’, 김지하가 남긴 생명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생명평화 선언’, ‘화엄 개벽의 모심’ 등 진지하게 김지하를 다시 보고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으로 원고를 모았다. 김지하 시인은 이미 40여년 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제반 상황들, 즉 생명 경시와 환경 파괴, 기후 위기와 전염병의 창궐, 핵전쟁 위기를 예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인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생명사상이란 화두를 높이 든 생명사상가이자 생명운동가였다. 이런 김지하가 누구였는지 세상에 다시 간곡히 알려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시인의 생명 세계관에 입각한 문명 전환의 길에 나서게 하는 데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엮은이 임진택은 이렇게 말한다. “단언하건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제반 상황들, 생명 경시·환경 파괴·기후 위기·전염병 창궐·핵전쟁 위기를 보면 김지하의 예언은 맞았다. 이에 대한 대안과 처방을 김지하는 40년 전부터 이미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고, 모색했고, 제안했고, 실험했고, 행동했고, 그리하여 기진할 때까지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