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자랑스런 한국인이 만든 ‘디즈니의 변화’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 감독 ‘모아나 2’
2024년 12월 09일(월) 17:38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 감독 ‘모아나 2’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 감독 ‘모아나 2’.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가 디즈니 했네.” 영화 ‘모아나 2’를 보고 난 첫 소감이 그랬다. 필자에게는 손녀가 둘 있어서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기쁨으로 낱낱이 들여다보고있는 중이다. 아가들이 4~5세가 되면 부쩍 공주놀이에 빠지게 된다. 이 무렵부터 한 3년 동안 공주 스타일의 옷을 입고 싶어 한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신데렐라 공주의 영향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각인시켜 놓은 배경에는 디즈니사의 영향력이 크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적 서사에는 얼굴이 희고 금발머리에 허리가 잘록하며 하늘하늘 연약한 팔을 지닌 서구적 미인 여성과 사악한 여성 또는 마녀가 등장하여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들 간의 갈등은 백마 탄 멋진 서구적 미남 왕자가 등장함으로써 해결의 국면으로 전환된다. 이는 곧 여성의 최종 목표는 왕자와 같은 남성과 결혼하여 신분상승을 이루는 데 있다는 듯 재생산되어 파급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편견에 대한 반성은 ‘모아나’(2016)로부터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안 모아나는 작은 키에 적당한 근육과 구릿빛 피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모험심 가득한 캐릭터로 형상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서구적인 기준의 획일화된 미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디즈니프린세스 라인을 모아나는 부정하고 족장의 딸로서 자신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결정하며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주체적 캐릭터다. 지금껏 만연된 영웅서사에 여성을 대입시킨 것은 놀라운 발전이었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신분상승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층위에서 주체성을 가지며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다. 남자 주역인 마우이도 근육질의 잘생긴 서구식 미남과는 거리가 멀다. 짧은 목에 덩치 큰 뚱뚱한 몸을 문신으로 채우고 곱슬머리로 그려낸 캐릭터는 보다 큰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

‘모아나 2’의 기대는 이러한 8년 전의 의미에 가산점을 미리 두고 관람을 시작했던터라 스토리와 그래픽, 인물묘사 등 디테일을 즐기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소녀 모아나는 한층 성숙미가 넘친다. 그간 태어난 세 살배기 여동생 시메아가 귀엽기 짝이 없다. 남태평양의 모투누이 섬에 사는 모아나는 바다와의 교감이며 카누조정 및 항해술로 보나 용맹함이며 부족에 대한 사랑 및 범인류애 등의 자질이 타우타이(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타우타이가 된 모아나는 섬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조들의 예시에 따라 저주를 풀기 위해 항해에 나선다. 오래 전 폭풍의 신 날로의 저주로 인해 바닷속에 가라앉은 고대의 섬 ‘모투페투’를 찾고 그동안 저주로 인해 교류가 막혔던 태평양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과의 교류의 길을 열기 위해 항해에 나서는 것이다. 선원은 선실에서 야채를 가꾸는 힘없는 노인, 겁쟁이 돼지 푸아(하와이어로 돼지), 멍청한 수탉 헤이헤이(폴리네시아어로 수탉), 말썽쟁이 등등 다섯 친구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신반인 마우이가 조력자로서 합류하게 된다. 이들의 앞날에 빌런들과의 파란만장한 방해가 쉴틈없이 전개됨은 물론이다.

키워드는 ‘길’이다. “길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라.”, “길은 없지 않다. 항상 다른길이 있다”는 메시지가 대사 중에 귀에 박힌다. 성장기에 놓인 아이들이며 청년들에게도 귀에 속속 박히면 좋을 듯하다. ‘모아나(Moana)’는 폴리네시아어로 ‘바다’를 뜻한다. ‘마우이(Maui)’는 뉴질랜드에서 하와이에 이르기까지 폴리네시아 전 지역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신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이다. 신화에 의하면, 섬들을 수면 위로 건져올려 하와이 섬을 만들었고 때로 태양을 조절해서 낮을 길게 하는 능력자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려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외국인 세 여성이 객석이 비워지자마자 엔딩 뮤직에 맞춰 춤을 추고 스크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이 부여하는 흥겨움에 겨워 필자도 그들을 위해 자청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들은 영화의 무엇을 즐겼을까? 그녀들의 관심사는 캐릭터였다. 그 중 한 친구는 수탉 헤이헤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재미있는 것은, ‘모아나’의 중요한 캐릭터 디자인을 한국인 김상진 씨가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2014), ‘겨울왕국’(2013)의캐릭터 일부를 맡아 했다는데, 디즈니가 변화를 꾀한 주역 중 하나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