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계엄상황에 큰 충격···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노벨상 수상 공식 기자회견·강연
비상계엄 비판·고향 광주 언급
“게엄 당시 시민들 용기 느껴져”
소설 '소년이 온다' 집필 배경도
비상계엄 비판·고향 광주 언급
“게엄 당시 시민들 용기 느껴져”
소설 '소년이 온다' 집필 배경도
2024년 12월 08일(일) 19:00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지난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12·3 계엄사태와 고향 광주에 대해 언급해 주목받고 있다.
한강 작가는 지난 6일 오후 1시(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 작가는 이번 비상계엄이 과거의 계엄과 다른 부분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돼 모두가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비상계엄 상황에서 시민들은 SNS를 통해 국회가 봉쇄된 상황,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침입하는 모습 등을 공유했다.
한 작가는 군인들의 행동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쓰셨던 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며 제지하려는 모습 등을 보며 시민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고 젊은 경찰과 군인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며 “명령을 내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력이나 강압으로 통제하던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지난 7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자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
그는 이날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을 통해 12살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광주 사진첩을 보며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 또 ‘압도적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가 본 5·18을 기록한 사진첩은 유족들과 시민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자를 본 그는 “당시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인간의 잔혹성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품게 됐다”고 덧붙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진첩을 보며 떠오른 의문을 잊어간 한강 작가는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그 의문들이 다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한강 작가는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고, 900여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매일 9시간씩 읽으며 완독했다.
집필 과정에서 한강 작가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되고,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7년여에 걸쳐 완성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 한 작가는 “아직 다음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작가는 또 1979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하기 전 8살 어린 한강이 쓴 시를 소개하며 자신의 삶과 소설의 집필 과정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한강 작가는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상자에는 한강 작가가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들이 담겨 있었다.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는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도 함께 발견됐다. 그는 “‘시집’은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반을 접은 스테이플로 중첩한 책이었다”면서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가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스스로 ‘쓰는 사람’이 됐다고 밝혔다.
이번 강연을 마친 한 작가는 오는 10일(현지시간)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을 예정이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