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강경필>늦어도 괜찮다는 믿음
강경필 광주교육연구소 이사
2024년 12월 01일(일) 17:11
강경피 광주교육연구소 이사
AI디지털 교과서가 2025년 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졸속으로 추진한다는 우려가 많다. AI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태블릿 PC가 보급된 것도 10년이 조금 넘었다. 교과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보급하는 일은 훨씬 많이 검토하고 더디게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교과서의 변화는 미래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 불안을 지우고 이 사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도 충분하다. 지금 AI개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도 책으로 배웠다. 아니 AI도 책으로 배웠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지켜 보며 충격에 빠진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대화형 인공지능인 챗GPT가 2022년에 등장해 일반인들이 직접 인공지능을 체험하면서 놀라움은 더욱 확대 되었다. 이후로는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말로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된 발전이 폭발하고 있다.

기술변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그것이 일상까지 확대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면 교육도 변화가 뒤따라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짧게는 2년 정도 길게는 8년 사이에 코딩교육 열풍부터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교육까지 급속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불안을 파는 상품에 불과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훅 날아갈 버릴 헛 껍데기 같은.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고,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서둘러 따야 할 것처럼 굴었던 것과 같은 소동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은 세상을 바꾸었지만 컴퓨터 교육과 인터넷 교육 스마트폰 교육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남루한 교육이었을 뿐이다. 둘 사이는 구별되어야 한다. 함부로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의 얄팍함과 한번 만든 시스템은 쉽게 변화대응을 못하는 경직성이 생기는데, 최신 기술은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교육체계화를 배반한다. 스마트폰은 끊임 없이 업데이트 되지만 스마트폰 교재는 그 업데이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똑같은 이유로 AI디지털 교과서는 막대한 예산만 쓰고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는 헤프닝으로 남을 것이다. 과거 학교마다 보급된 OHP나 실물화상기 등이 이미 거쳐간 운명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다만 교과서의 지위를 확보하면 AI디지털 교과서는 과거에 도입된 교육 보조재와는 비교도 안되는 단위의 문제를 만들 것이다. 오래 지속되지는 못 하겠지만 그 폐허의 상흔이 커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화하는데 학교는 혹은 교과서는 변화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다. 학교는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예측하고, 변화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지금 음악교과서에는 뉴진스나 방탄소년단 뿐만 아니라 마이클잭슨의 음악이 실리지 않는다. 진은숙의 음악이나 한스 짐머의 음악도 등장하지 않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큰 문제의식이 없다. 문학교과서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문학이라고 30년전 문학이 가장 최근의 문학작품이다. 한국어가 놀랍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교과서는 더디게 변화한다.

교과서 변화가 늦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 안에 새롭게 진행되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수록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뒤쳐짐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 뒤쳐짐 대신에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은 불안을 매개로 하지 않고 안정을 추구한다. 그 안정이 학습에 미치는 긍정성이 크다. 시는 계속해서 기존의 언어 바깥으로 나아가려 시도하고, 그 성공사례들이 다시 굳어진 언어를 만든다. 학교에서는 그 굳어진 언어를 배운다. 당대에는 새로웠을 지금은 당연한 옛글을 읽고 쓰는 것은 여전히 가치있다.

학교란 시스템이 변화에 더딘 것을 용인하는 대신 변화는 다른 방식으로 추동되어야 한다. 모든 학습 경험을 학교 안에서만 할 수 있다고 믿는 고리타분한 믿음을 깨고, 학교 안과 밖에서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보장하는 차원으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는 작아지고, 학생의 시간적 여유는 더 많아지는 방식으로의 변화.

학생들은 이미 혹은 곧 디지털도 AI도 아무런 교과서나 교과과정 없이 교육부 장관 보다 더 익숙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