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다양성의 보편화
곽지혜 취재1부 기자
2024년 11월 03일(일) 18:21 |
곽지혜 기자 |
최근 회전문을 돈 뮤지컬이 있다. 공연계에서 회전문은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비싼 티켓값과 그 돈을 들고서도 한 자리 잡기 어려운 극악의 티켓팅 난이도까지. 갖은 장애물을 뚫고 n회차 관람한 뮤지컬 ‘킹키부츠’에는 드렉퀸 ‘롤라’와 엔젤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관객들을 “레이디스 앤 젠틀맨, 이런 저런 그런 분들, 그리고 당신”이라고 칭한다. 자신들 역시 신사와 숙녀 사이 어디쯤에 있는 ‘이런 저런 그런 분들’이다.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진한 화장과 높은 하이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세상의 무수한 편견에 당당하게 맞선다. 드렉퀸은 타고난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와는 차이가 있다. 어쩌면 ‘내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시선을 감당해야 해 더 외로운 존재들일 수도 있다.
극에서 이들은 괴로워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밝고, 더 화려하고, 더 흥에 겹게 춤추고 노래한다. 신사도, 숙녀도, 이런 저런 분들도, 마지막 당신인 ‘나’ 자신도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삶이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준다.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응원에 한없는 위로를 받는다.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계에서는 이처럼 젠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캐릭터나 ‘젠더 프리 캐스팅’이 호응을 얻고 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으로, 시인 윤동주나 햄릿이 여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자체를 여성으로 설정해 극을 재구성하거나 애초에 성별을 정해두지 않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고전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 중심의 서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연계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Why not?’의 개념이 더 강하다. 식민지의 상황을 괴로워하는 윤동주와 고뇌하는 햄릿이 여성이면 안 될 이유가 없다.
공연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젠더, 인종,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다양성이 보편화되길 기대하고 싶다. ‘이런 저런 그런 분들'과 '당신'이 모두 더 존중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