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희망의 언어로 써내려간 ‘다름의 이해’
이미랑 감독 ‘딸에 대하여’
2024년 10월 28일(월) 17:37 |
이미랑 감독 ‘딸에 대하여’. 아토(ATO) 제공 |
이미랑 감독 ‘딸에 대하여’ 포스터. 아토(ATO) 제공 |
영화는 주인공인 나(배우 오민애)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사는 나의 일상은 매우 조용하다.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 이제희 여사(배우 허진)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로서의 정체성과 외동딸(배우 임세미)의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나. 나는 요양보호사로서 성심껏 제희 여사를 돌본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딸아이가 집문제 해결을 위해 급히 돈이 필요하다한다. 대출 방법이 없게 되자 집으로 들어오라 말한다. 집으로 이사온 딸아이는 그녀의 오랜 동성연애자인 여자친구(배우 하윤경)와 함께인지라 나는 말문이 막힌다. 그들은 서로의 애칭으로 ‘레인’과 ‘그린’이라 부르고 있었다. 퀴어 여성 커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보다 엄마의 심정은 더욱 참혹하다. “너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혼인신고 할 수 있니? 자식은? 가족이 될 수 있는 거냐고.”,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하게 막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설상가상으로 딸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임된 선배강사를 위해 투쟁하는 중이라, 나는 이를 극구 말리기까지 한다. 딸은 엄마의 가르침대로 소신껏 살고 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사람처럼 구느냐며 반박한다.
정상 가족이라는 사회 안전망을 거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딸이 나는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도 딸과 똑같은 면을 갖고 있다. 평생 장학사업에 자신의 재산을 다 바친 제희 여사에게 이재희 재단의 후원금이 중단되자 요양원에서는 예전과 다른 처우를 시작한다. 급기야는 무연고자 치매 시설로 보내어지고 만다. 내가 아무리 항의를 하고 여기저기 찾아가서 막아보려 해도 소용이 없는 일. 어쩌면 딸아이의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낙담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포기하지 않는다. 무연고 여성 노인의 현실과 퀴어 여성 커플의 미래를 요양보호사이자 부모인 중년여성의 시선을 통해 그려나가는 감독의 영상언어가 꽤나 가슴을 내려앉게 한다. 한개인의, 한 가정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들이 구성된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건드림으로써 예사로 바라볼 수 없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였다.
여성, 돌봄노동, 불안정한 노동시장, 성소수자 차별 등 한국사회의 그늘진 맥락을 갈등으로써 집어주는 영화 ‘딸에 대하여’는 연속 전개된 갈등들 속에서 몇 가지의 단초들이 희미한 희망의 언어로써 쓰이고 있었다. 먼저, 자식 하나 없는 무연고 노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훌륭함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다는 안타까움이다. 금기시 되어왔고 해고까지 당할 만큼 사회와 부모를 갑갑하게 만드는 퀴어 커플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란 어떤 것인지 일말의 답을 영화는 몇 개의 신으로 응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딸과 레인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신. 그리고 레인이 만든 빵을 제희 할머니가 맛있게 먹을 때 모두들 기뻐하는 신 등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았다. 원작자인 김혜진 작가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해하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미랑 감독 역시 “이해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가 11월말에 시작된다. 압구정CGV에서 세 차례 정도 상영되는 이 영화가 장편경쟁에서 좋은 상을 받기를 바라며….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