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감성 가득한 노부부의 한결같은 사랑 이야기
닉 카사베츠 감독 ‘노트북’
2024년 10월 14일(월) 17:59
닉 카사베츠 감독 ‘노트북’. 에무필름즈 제공
닉 카사베츠 감독 ‘노트북’ 포스터. 에무필름즈 제공
요즘 들어 관심을 끌 만한 신작이 좀처럼 영화관에 등장하질 않는다. 아무래도 자체 제작에 주력하는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플랫폼의 편재함 때문인가 싶다. 옛 작품들이 재개봉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오프라인 영화관은 아날로그식 감상 스팟으로 바꿔갈 모양이라는 성급한 예감이 앞선다. 결국 이번주도 재개봉 영화 ‘노트북’을 선택. 영화 ‘노트북’의 원작인 니콜라스 스파크의 소설 ‘노트북’(2004)은 미국의 베스트셀러였던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곧바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만큼 선풍적이지는 않았다. 기실 미국인의 정서를 우리나라 사람이 수용하는 데에는 적잖은 차이를 갖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이 문화정서적 차이는 좀더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에 온 국민이 기쁨에 들떠 있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두 번째 노벨상 수상소식의 감격에 한잔 아니 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다. 필자는 이 기쁨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광주·전남 사람, 광주의 역사적 진실, 광주지역의 사회적 DNA를 고스란히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듯한 으쓱함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문학상 선정이유에 대해 우리는 고대로 잘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을까? 이영준 문학평론가는 세계인이 놀라워하는 공감영역이 우리와는 다른 게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영혜와 결혼한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결정의 대목에 대해 한국의 대학생들과 영·미권 대학생들의 강의실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그려내는지를 파악하고, 안하고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 지적처럼 ‘모두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고 많은 지….

우리가 외면하거나 스쳐 지나갔던 개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직시하며 쓰다듬는 한강 작가처럼 처절하지는 않지만 ‘노트북’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어루만진다. 영화 ‘노트북’은 1940년대 미국 남부에서 있었던 청춘 남녀의 그렇고 그런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젊은이들의 열정 어린 사랑 이야기나 주역을 맡은 배우들의 러블리하거나 매력적인 외모의 눈요깃거리가 러브 스토리로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액자 형식의 회상방식이나 원작과 시간차, 시퀀스 등을 달리한 감독의 영화적 구성력도 그저 무난한 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적어도 필자의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드문 콘텐츠가 있었다. 노부부의 한결같고 변함없는 사랑의 결말을 구성한 것이다. 더욱이, 이 이야기는 원작자 니콜라스 스파크의 장인 장모의 실화였다 하니 성큼 다가오는가을철 관객들의 감성을 채워줄 아젠다로서 잘 장치되었다고 본다.

영화는 요양원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인 할머니 앨리에게 한 할아버지가 책을 읽어주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 할아버지 노아를 낯설어 하던 앨리 할머니는 점점 노아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에 빠져 든다. 책 이야기는 노아와 앨리가 처음 만나는 때부터 전개된다. 1940년 여름 노스캐롤라이나주 해안가 마을 시부룩에서 열린 카니발, 17세의 노아(배우 라이언 고슬링)는 앨리(배우 레이첼 맥아담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다. 구애 끝에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부호인 앨리의 부모는 마뜩찮은 노아를 떼놓고 만다. 2차세계대전이 운명을 갈라놓고 우여곡절을 겪고 또 겪지만 결국 이들은 사랑을 이룬다.

마음은 원하는 것을 원한다. 어떠한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 사랑에 빠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노아는 이렇게 말한다. “You are, and always have been, mydream.” (넌 언제나 나의 꿈이었어) 이와 유사한 순애보를 정을병 소설가의 자전적 저서에서 본 바는 있으나, 이를 두고도 필자와 필자의 주변인들은 아내를 잃기 전에는 그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거라며 냉정한 시선을 보낸 적이 있다. 영화 ‘노트북’의 재개봉이 아직껏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의미라면 우리 사회에 순애보의 잔재는 그래도 어딘가 있는 모양이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