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크나큰 불행
이용환 논설실장
2024년 10월 03일(목) 17:10
이용환 논설실장
“수천 명이 죽었다는 마이즈루 침몰 현장,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인류의 불행이다. 그 역사를 후대에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지난 1995년 일본의 영화 제작자 이토 마사아키 씨가 ‘아시안 블루’를 개봉했다. 50년 전, 미궁으로 빠져버린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다룬 영화.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일본이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는 무거운 내용이었지만 영화는 차분하고 절제된 화면으로 그날의 비극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철저하게 계산된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는 일제의 만행도 어떤 영상보다 참혹했다.

우키시마호에서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1945년 8월 21일. 징용으로 끌려갔던 한국인을 가득 실은 4370톤 급 해군수송선 우키시마 호가 일본 오미타노항을 출발했다. 오랜 설움 끝에 맞는 고향으로 가는 길. 하지만 우키시마호는 바로 그날 부산으로 향하던 경로를 벗어나 마이즈루만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24일 오후 5시 20분,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해방의 기쁨을 열흘도 채 누리지 못하고, 이국의 바다에 수장된 수천 명의 조선인들. 지금도 그들은 누구인지도 몇 명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깊은 바다에서 원혼으로 떠돌고 있다.

사고 원인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시 일본은 미군의 기뢰에 불가항력으로 침몰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정황상 믿기 어렵다. ‘고의적 자폭’이라는 일본의 비밀문서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사망자도 일본은 전체 승선인원 3990명 가운데, 한국인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명이라고 확인했지만 생존자들은 당시 승선했던 사람이 7500여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사망자가 5000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진행했던 진상조사마저 ‘일본의 발표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만 공식화 했을 뿐, 여태껏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우키시마호 사고가 발생한 지 올해로 79년. 우키시마호 침몰이 일본 군부의 고의적 자폭일 수 있다는 증거가 지난 1일 또 다시 제시됐다. 지난 9월에는 지금까지 일본이 숨겨왔던 승선자 명부의 존재도 알려졌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면 마땅히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도리다.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전쟁범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반성과 사죄는커녕 사실마저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 그들이 저지른 우키시마 침몰사고는 마사아키의 말처럼 ‘개인의 불행이 아닌 인류의 불행’이 맞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마저 서슴지 않았던 일본 극우. 반성도 사과도 없는 그들의 뻔뻔함이 인류에겐 크나큰 불행이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