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금배추와 가난한 농부
김성수 논설위원
2024년 09월 24일(화) 17:50
최근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만원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금배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각 유통사에서 조사한 배추 가격은 한 포기에 평균 9321원으로 1년 전 이맘때보다 50.5% 올랐다. 시장과 마트에 유통되는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만원(소매가)을 넘은 지 오래다.

‘금배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 폭등을 이끈 건 올여름 내내 이어진 폭염 때문이다. 여름 배추는 주로 강원도 고랭지에서 재배되는데, 강원도마저 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며 18~20도 수준인 배추 생육환경이 크게 나빠졌다. 겨울배추도 사정이 좋지 않다. 9월 폭우로 인해 겨울배추 최대 생산지인 해남 배추가 피해를 입어서다. 피해 면적만 611㏊로 올가을 해남 전체 배추재배 면적(4299㏊)의 14%에 이른다. ‘금배추’가 김장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농작물 가격이 치솟을 때 흔히들 금(金)값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금배추도 이 같은 용어 사용의 산물이다. 그런데 따져보자 금값으로 비유될 만큼, 배추값이 상승했다면 금을 캐는 농부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횡재가 아닌가. 폭염과 폭우로 재배량이 줄었더라도 제값도 아닌 금값을 손에 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농부들은 가난하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기후 요인도 크지만 농촌의 인건비·농자재값 상승 등이 가장 큰 요인이다. 농작물 가격 상승은 물가상승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3만원에 육박하고 각종 외식비도 증가하는데 농작물이라고 가격이 오르지 말란 법은 없다. 농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치 않은 채 농산물을 싸게만 먹는다는 인식이 너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도 문제다. 김장철도 아닌 상황에서 배추 가격상승에 중국 배추 수입을 결정했다. 정부 차원의 배추 수입은 지난 2010년(162톤), 2011년(1811톤), 2012년(659톤), 2022년(1507톤)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오는 27일 부터 수입된다고 한다. 과거 배추값이 하락할 때 무대책이었던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하락은 ‘너도나도’ 심은 생산자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기후 영향으로 생산량 감소와 가격 폭등까지 생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가혹해 보인다. 농작물의 제값을 받는 건 농민들에게도 정당한 권리다.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때 가격상승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당장 김장철도 아닌 상황에 정부의 호들갑스러운 대책에 농가의 꿈은 또다시 무너졌다. 정부의 좀더 신중한 대책과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가난’을 꿈꾸며 농사를 짓는 어리석은 농부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