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서구 중심의 미술무대 아시아로 이동 견인”
광주비엔날레 30년 발자취
1995년 서울 등과 경쟁 끝 유치
‘5·18의 아픔’ 문화적 치유·승화
‘광주정신’ 미술 통한 갈등 극복
대중성 취약·상시 참여공간 ‘숙제’
1995년 서울 등과 경쟁 끝 유치
‘5·18의 아픔’ 문화적 치유·승화
‘광주정신’ 미술 통한 갈등 극복
대중성 취약·상시 참여공간 ‘숙제’
2024년 09월 04일(수) 18:56 |
올해로 창설 30주년을 맞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오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판소리, 모두의 울림’을 주제로 비엔날레 전시관 등에서 열린다. 지난 제1회 광주비엔날레부터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왼쪽부터 시계방향)와 제일 왼쪽 오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외신 평가 중 하나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정신의 시각화’와 ‘지역 미술의 세계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단계적 발전을 이어왔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장으로 우뚝 선 30년 발자취를 돌아본다.
국내 첫 비엔날레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3년 대전과학엑스포를 잇는 문화예술 분야의 국제행사였다. 그 주인공은 ‘광주’였다.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가 100주년이 되던 1995년,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문화예술의 부흥은 시대적 과제였다. 문민정부가 내걸었던 ‘세계화·지방화’ 정책 기조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비엔날레를 광주로 가져오기까지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기 1년 전인 1994년 정부는 이미 국가 주도의 비엔날레로 ‘서울비엔날레’를 추진 중이었고 삼성에서 비엔날레 건물을 지어주기로 후원을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국제 첫 비엔날레가 다른 도시가 아닌 광주에서 열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5·18민주화운동이 남긴 상흔을 문화적으로 치유하고 승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일단 저지르자는 생각으로 밀어붙인 비엔날레 광주 유치 작전은 1994년 11월 광주비엔날레 창설 발표로 마무리되며 성공했다. 짧은 기간 내 비엔날레 전시관을 건립해야 했고 서울과 비교해서 부족한 도시 인프라, 전문인력 등은 차츰 개선해야 할 몫이었다.
광주의 특성은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만들었다. 1회 행사 ‘경계를 넘어서’는 미술을 통해 이념적 반목과 갈등을 넘어섰고 7일 개막을 앞둔 15회 행사 ‘판소리, 모두의 울림’ 역시 판소리를 매개로 기후위기·서식지 파괴·분쟁 등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전 지구적 공간을 탐구한다. 이처럼 역대 예술감독이 주목한 ‘광주정신’은 특정 지역을 넘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적용 가능한 담론이 된다.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자유롭게 함유할 수 있다는 것은 광주비엔날레의 강점이었다.
더불어 매회 광주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협업해 외부전시와 국가별 부록전시 파빌리온 등을 열어 광주 전역을 ‘아트’로 잇기도 했다. 갤러리는 물론 5·18자유공원, 양동시장, 대인시장, 지역 커뮤니티 공간 등에서 비엔날레 전시가 분산됐다. 광주 도심 곳곳에 소규모 건축조형물을 설치하는 ‘광주폴리’ 프로젝트까지, 예향 광주의 브랜드 이미지가 강화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올해 행사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31개 파빌리온이 설치된다. 이 외에도 광주비엔날레는 2005년 디자인비엔날레, 2010년 아트페어, 여러 특별전 등을 주도하며 외연의 확장을 거듭했다.
성장을 거듭한 광주비엔날레지만 아쉬움도 있다. 대중성이 취약하고 지역의 밀착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여전히 대중과의 소통, 부수적 서비스 확대, 언제든 광주비엔날레를 찾아오게 할 상시 참여공간, 연계 프로젝트의 장기적 관리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 최근엔 기후, 여성, 탈식민 등 기존 담론을 되풀이한다는 비판적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도선인 기자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