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28-1>의료공백에 ‘응급실 뺑뺑이’ 내몰린 시민들
전공의 이탈 장기화 초비상체제
긴급환자 받아줄 병원 없어 사망
왜 환자가 책임져야 하나” 분통
의료계 “필수과 전문의 한계 넘어”
2024년 09월 01일(일) 18:14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광주·전남본부 조선대병원 지부가 총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1일 조선대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환자 옆을 지나가고 있다. 나건호 기자
“여러 문제가 있지만 비상 진료 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의료와 관련해 이같이 발언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의료계에서는 곧바로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을 일선 의료기관에 가보라고 하라. 직접 119 구급차를 타보시길 권해드린다”고 반발했다.

의료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수시간을 기다리는 환자와 ‘응급실 뺑뺑이’를 경험했던 환자 가족들은 한결같이 “현장 좀 와봐라. 사람이 죽어나간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의정 갈등 심화와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전국 병원이 초비상체제로 운영 중이다. 광주에서는 조선대학교병원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총파업까지 벌어지면서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응급 환자를 치료할 의사와 병상이 없어 이곳 저곳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가 전국적으로 발생, 사망하는 환자까지 발생하고 있어 사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소방노조에 따르면 지난 7월30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40대 남성 A씨가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는 A씨를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지만,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14곳으로부터 모두 거절 당했다가 결국 사망했다. 이튿날인 31일에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가 10여곳의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끝내 숨졌다. 실제로 지난해 한 해 응급실 뺑뺑이 횟수는 15건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17건이 발생했다.

이런 현상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난 3월4일부터 7월31일까지 중앙응급의료상황실 및 광역응급의료상황실 접수현황을 보면 전국적으로 총 5201건의 전원 요청이 있었다. 이중 2799건은 선정됐고 2325건은 이송 결정이었으며 459건은 자체 결정, 15건은 응급실 외 방문이다. 이송이 되지 못한 ‘선정 불가’ 사례는 무려 273건에 달했다.

선정 불가 사례를 지역별로 보면 광주에서는 7건, 전남에서는 19건이 발생했다. 응급실로 가지 못하고 계속 거부당한 것이다.

이외 지역은 △서울 59건 △경기 52건 △부산 24건 △경남 18건 △경북 16건 △인천 15건 △강원 14건 △대전 12건 △충남 11건 △전북 9건 △부산 7건 △충북 6건 △제주 2건 순이다.

환자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1일 전남대병원을 찾은 이정숙(81)씨는 “시골에서 아침부터 올라와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저번에는 검사 하나 받고 진료 없이 내려갔다가 일주일만에 다시 올라오기도 했다”면서 “의사도 없고, 간호사도 없으면 아픈 사람은 어떻게 하나. 왜 책임을 환자가 져야 하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온 장혜진(41)씨는 “요즘은 아프면 안된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하나만큼은 세계에 내세워도 될만큼 빠르고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제발 병원이 빨리 정상화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의사 등 의과대학 교수들은 정부가 응급의료 위기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1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강행이 6개월 넘어가며 전국 응급실들이 굉음을 내고 무너지고 있다”며 “사력을 다해 버텨오던 응급의학 전문의와 배후에서 수술과 치료를 담당하던 소위 필수과 전문의들이 한계를 넘어가면서 건강에 이상을 보이며 현장에서 쓰러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의 최종치료 능력 저하로 수용이 불가해 응급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길에서 죽어가고 있고, 3차병원이 해야 할 일을 떠맡은 2차병원들도 이제는 한계를 초과하고 있다”면서 “현장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현장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위기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