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경술국치의 날
이용환 논설실장
2024년 08월 29일(목) 17:19 |
이용환 논설실장 |
나라 잃은 설움은 컸다. 일본은 을사늑약을 구실로 한국에 있던 외국 공관들을 모두 폐쇄하고 한국 정부의 외무부 격인 외부아문도 없애버렸다. 자주권은 물론이고 사법권과 행정권마저 강제로 빼앗아 갔다. 대한제국의 이름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극악무도한 일본은 우리의 글과 말을 빼앗았고,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도 금지했다. 이름마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서슬 퍼런 총칼로 독립운동을 탄압해 많은 애국지사들이 형장의 이슬이 된 것도 주권을 잃은 나라의 슬픔이었다.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는 이런 경술국치를 ‘엉터리 문서로 밀어붙인 원천 무효의 조약’이라고 했다. ‘조약에 남겨진 불법과 강제의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데다 순종 황제가 ‘한국병합조약’의 비준을 거부했고 황제의 친필 서명마저 위조한 세계 조약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조약’ 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태진 저 끝나지 않은 역사) 역사학자 정재정도 “마치 비상계엄 상태와 같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언론과 출판이 엄격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은 그 사실조차도 잘 알지 못했다.” (정재정 저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 고 썼다.
29일은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경술국치일이었다. 일본은 식민지배 기간 한국인들을 일본인과 동화시키고, 일본 국민으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강제 징용부터 위안부 까지 성적 학대와 인권 침해도 극악했다. 그야말로 치욕과 분노가 점철된 폭력적인 시기였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경술국치 이후 지금도 대한민국이 일본을 매개로 반민족과 반역사적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일파가 득세하고 독도 지우기가 횡행하는 것은 지금껏 친일 청산을 못한 우리의 업보다. 건국절로 독립정신을 훼손시키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마저 인정하지 않는 일부 인사들의 왜곡된 역사관도 자업자득이다. 일제강점기보다 못난 현실, 114년 전의 굴욕이 선연한 ‘경술국치의 날’이 원통하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