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폭염과 의료공백
곽지혜 취재1부 기자
2024년 08월 28일(수) 17:35 |
곽지혜 기자 |
지금도 저런 집 앞 평상이 있구나 싶다가 올여름 특히 자주 회자됐던 1994년 여름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1994년의 여름은 내 기억 속 풍경은 아니다. 그저 TV나 영화에서 ‘기록적인 더위’로 표현되던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에서 신촌하숙을 운영하는 성동일, 이일화 부부는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집 앞 골목 담벼락 밑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어떻게 길바닥에서 잠을 자냐고 툴툴거리던 ‘개딸’ 고아라도 집집마다 자리를 펴놓고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로 그득한 골목 풍경을 보곤 말없이 베개를 들고나온다. 추억으로 미화된 드라마 속 풍경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30년 전 폭염이 좀 더 견디기 수월했을지 모른다는 염치 없는 생각이 든다.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28일 기준 국내 온열질환자는 3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3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는 열사병으로 응급실에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다. 최근 부산에서는 한 40대 남성이 온열질환 의심 증상으로 쓰러지며 머리를 다쳤지만, 시골도 아닌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에서도 곧바로 이송될 수 있었던 응급실이 없었다. 남성은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 병원에 도착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치고 결국 숨졌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6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30년 전 여름은 더위 자체로, 혹은 병원이 멀어 고통받았을지언정, 수많은 병원을 코앞에 두고 구급차 안에서 ‘응급실 뺑뺑이’를 돌며 숨지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간호사로 이뤄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총파업 소식에 환자들은 또 한 번 철렁하는 가슴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그나마 각 병원의 교섭 타결 소식이 속속 들려오며 최악의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돌아올 생각이 없는 의사들의 자리를 메꾸고 있는 이들이 다시 두손 두발을 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의 지표들을 차례로 갈아치운 2024년의 여름은 어쨌든 지나가고 있다. 지금 최악의 의료 대란도 이번 여름처럼 어쨌든 지나갈까. 기대 없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