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나대용 장군의 발자취
●나주 오륜마을
거북선의 설계자 나대용 장군
그의 사적을 기리는 오륜마을
과학의 날 열리는 나대용 추모제
‘거북선 테마로드’로 재탄생
2024년 08월 22일(목) 18:22
나대용 동상. 소충사 앞에 세워져 있다.
거북선으로 변신한 창고. 벽화 그리기 사업의 하나로 단장됐다.


거북선 조형물과 나대용 동상. 소충사 앞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안다. 모르는 이가 없다. ‘임진왜란’하면 충무공과 거북선을 연상한다. 그러나 거북선 제작에 큰 공을 세운 나대용 장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여기에 나대용 장군의 사적을 밝혀두는 이유다.’

체암 나대용 장군 기적비에 새겨진 비문의 일부다. 기적비(紀蹟碑)는 1975년 나주시 문평면에 세워졌다. 비문을 이은상이 지었다. 이은상은 당시 나대용장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었다.

기적비 옆에 나대용 동상과 함께 거북선 조형물도 조그맣게 세워져 있다. 나대용을 모신 사당 소충사(昭忠祠)도 있다. 1978년 세운 사당에는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영정은 이종상 화백이 그렸다.

소충사에서 나대용 추모제가 해마다 4월 21일 과학의 날에 열린다. 거북선이 과학과 발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추모제엔 나대용함의 해군 승조원들도 참석한다. ‘나대용함’은 우리 해군이 운용하는 최첨단 잠수함이다.

나대용함은 1999년 옥포 대우조선소에서 건조했다. 1200톤급으로 길이 56m, 폭 6m에 이른다. 물속에서 음향까지 탐지해 표적을 찾아낸다. 유도탄 미사일로 수십 마일 떨어진 표적을 명중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대용 동상과 거북선 조형물 앞에 작은 연못도 있다. 나대용이 거북선을 시험 운항한 방죽골을 형상하고 있다. 옛 방죽골은 지금 논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방죽골을 복원하면 어떨까? 물 위에 대형 거북선 한 척 띄우면 더 좋겠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배를 타고 거북배의 지자포와 현자포를 쏘았다. 순찰사의 군관 남공이 살펴보고 갔다. 정오에 동헌으로 나가 활 열 순을 쐈다. 관청으로 올라가면서 노대석을 봤다.’

1592년 4월 12일(양력 5월 22일) ‘난중일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이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타고 화포 발사 훈련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순신은 이 거북선을 앞세우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북선을 설계한 나대용(羅大用, 1556~1612)이 나고 자란 마을이 오륜마을이다. 오륜마을은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五龍里)에 속한다. 오래 전부터 금성나씨가 자작일촌을 이루며 산 곳이다.

오룡리는 백룡과 복룡, 오륜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이 백룡산 아래에 있다고 백룡(白龍), 용이 엎드린 형상이라고 복룡(伏龍), 삼강오륜을 잘 지킨 예의 바른 곳이라고 오륜(五倫)이다.

오륜마을에 나대용 생가가 있다.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어있는 초가다. 뒷산은 어린 나대용이 뛰놀던 곳이다. 생가에서 3㎞ 떨어진 선산에 묘지도 있다.

마을주민의 자긍심이기도 한 나대용과 거북선이 담장벽화로 그려져 있다. 물방개 노니는 모습을 보고, 거북선 제작에 몰두하는 나대용을 볼 수 있다. 창고까지 거북선으로 단장돼 있다. 진짜 거북선 같다. 삼강오륜을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려졌다.

“볼만 허요? 젊은 사람들이 와서 그린거여.”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어르신의 말이다. 담장벽화는 2022년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그렸다.

나대용은 이곳에서 거북선 연구에 매달렸다. 군관 신분으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찾아 거북선 제작을 건의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이었다. 거북선 제작은 이순신이 지휘했다.

나대용은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도해전, 명량대첩, 노량해전에도 참가했다. 거북선은 사천해전에서 첫선을 보였다. 거북선의 돌격에 일본군은 혼비백산했다. 조선수군의 바다 장악엔 돌격선 역할을 한 거북선 공이 컸다.

나대용은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여러 차례 부상도 입었다. 이순신이 모함을 당하고 투옥되자, 무고를 호소하는 절의도 발휘했다.

나대용은 임진왜란 직후 창선도 만들었다. 창선은 거북선과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칼과 창을 빽빽이 꽂을 수 있는 배다. 판옥선과 거북선을 움직이려면 120여 명의 격군이 필요했다. 창선은 42명으로 거뜬히 움직였다. 여러모로 효율적인 배였다.

남해현령으로 있던 1611년엔 ‘해추선’으로 이름붙은 쾌속정도 만들었다. 나대용은 배를 만드는 조선 기술자이자 과학자이고 발명가였다. 그의 이름대로, 나라에 크게 쓰였다.

오륜마을 앞 문평면소재지를 지나는 도로 이름이 ‘체암로’다. 체암(遞菴)은 나대용의 호다. 체암로는 나주 문평(옛 고막원역 앞 삼거리)과 광주 광산구 삼도동을 잇는 18.6㎞의 도로다.

마을에 봉강사도 있다. 고려 때 문신을 지낸 금성나씨 나문규(1312~1379)와 나계종(1339~1415)을 모신 사당이다. 나계종은 조선 건국 이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왔다.

1924년 다시 세운 봉강사는 밖에서 보면 2층 기와집처럼 보인다. 들어가서 보면, 아니다. 사방으로 공간을 넓히려고 지붕을 하나 더 설치했다. 문중의 모임 장소로 쓰인다. 마을사람들 쉬는 정자로도 활용된다.

주민들은 앞으로 추진될 마을 정비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계획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농촌공간 정비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윤곽을 드러냈다. ‘나대용 장군 숨결 따라 청정 거북선 마을’을 비전으로 쾌적한 생활공간으로 꾸미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오래전부터 민원이 제기된 축사와 빈집 철거가 첫걸음이다. 그 자리에 충효관과 임대주택을 짓고 교류마당, 스마트팜 등을 시설한다. 나대용 생가와 소충사를 연결하는 길도 ‘거북선 테마로드’로 정비한다. 사업비는 오는 2027년까지 180억 원(국비와 지방비 각 50%)이 투입된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