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조림왕 임종국
김성수 논설위원
2024년 08월 13일(화) 17:27
1968년 전국에 몰아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큰 피해가 있었다. 밭작물 뿐 아니라 조림사업이 한창일 당시, 뿌리가 채 자리 잡기 전에 나무들이 전부 말라죽을 위기에 처했다. 황폐화된 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려던 계획도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나 둘씩 말라비틀어져 가는 나무를 차마 방치할 수 없었던 한 남자는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물을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물을 구하려 다녔다. 누가 봐도 물을 지고 산을 오른다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지게를 놓지 않았다. 어깨가 피투성이가 될 정도였다. 이를 지켜보던 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감동했다. 급기야 온 마을 주민들이 산으로 물을 지어다 나르는 진풍경이 벌여졌다. 주민들 모두 어깨가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했다. 죽어가는 나무를 살려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그들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마을 주민을 감동시킨 물지게의 주인공은 ‘한국의 조림왕’ 고 춘원(春園) 임종국(林種國·1915~1987)이다. 그의 삶은 숲 자체였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의 조림사업은 1976년까지 계속됐다. 꼬박 20여 년간을 헐벗은 산 570㏊에 28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가꾼 것이다. 그 숲이 바로 장성 축령산 편백림과 삼나무숲이다.

그는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의 인촌 김성수 선생 소유 야산에 심어진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보고 조림사업에 뛰어들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께 도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의 조림왕인 임종국 선생의 말로는 쓸쓸했다. 그는 1980년대 뇌졸중으로 쓰려진 뒤 7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비와 빚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게 나라사랑하는 길이다.” 조림왕 다운 유언이다. 조림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임종국 선생은 지금 그가 가꾼 장성 축령산 자락에 묻혀있다.

조림사업에 헌신했던 임종국 선생의 감동실화를 바탕으로 꾸민 창극이 무대에 올랐다. 청강창극단은 지난 10일 장성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임종국 선생의 일화를 다룬 창극 ‘8월의 선물’을 초연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가뭄과 폭우, 대형 산불 등 이상기후와 재해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어깨를 짓눌리는 고통을 이겨내며 물지게를 짊어졌던 임종국 선생. 후손을 위해 아낌없이 주고 떠난 그의 삶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과 공동체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