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김강>아, 그리운 스승님!
김강 호남대 교수
2024년 08월 06일(화) 17:44
충격적인 뉴스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매각됐다는 소식이었다. 기념관으로 사용하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반하여 가택을 처분한 아들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며, 거액의 상속세 처리를 탓했다고 한다. 사저를 매입한 3명의 주인은 공간 ‘일부’에 고인의 유품을 전시하기로 ‘약속’했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동교동 사저는 DJ가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개딸, 윤심, 어대명이라는 파벌과는 ‘레벨’이 다른 ‘동교동계’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특히 군사 독재 시절 DJ가 무려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했던 한국 근대정치사의 역사적 장소다. 2009년 8월 18일 타계할 때도 동교동에 머물렀다. 다른 가족의 말처럼 “눈뜨고 역사의 현장이 날아가는 것”을 대한 천지가 지켜본 셈이다. 2024년 김대중 탄생 100주년에 더욱 황당한 경우다.

시간을 되돌려 DJ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조우를 더듬어본다. 2006년 10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전남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식과 특별강연이 있었다. 몸의 절반은 지팡이에 의존한 채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위엄 있게 식장에 들어서는, 구구절절한 그의 삶의 여정이 육체에 고스란히 체화된 듯한, DJ의 모습에 가슴 저미는 연민과 함께 존경의 마음이 용솟음쳤다.

‘한반도의 현실과 4대국’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DJ는 참으로 달변이셨다. 치밀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 준거한 주체적이고 창의적 주장에 대강당을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메운 청중들은 동감과 지지의 박수를 수차례나 보냈다.

강연 후 학생들의 질문에 재치 있는 유머를 섞어가며 자신의 견지를 가끔은 타이르듯 때로는 강하게 설득하셨다. 그지없이 적절하게 답변하는 그의 모습은 매서운 정치적 기교와 교묘한 화법, 그리고 파고들기 힘든 무쇠 심장을 무기로 하는 정치인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평생을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참고 이겨낸 후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든 양태와 고통을 헤아려주고 다독여주는 따스한 인정을 지닌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시종 진지하게 말씀하셨으며, 이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므로 우리의 선배라는 학생사회자의 언변에 자신은 오늘 이곳에 처음 왔기에 오히려 후배라는 말로 스스로를 학생보다 낮추고 존대하는 겸손의 모습도 보여주셨다. 자신을 향한 변함없는 지지와 인기몰이를 계산한 정치적 플레이가 아니라 매우 꼼꼼하고 엄하지만 자상하게 젊은이의 도전적 미래를 염려하여 애정으로 가르쳐주시는 ‘큰 어른’의 모습에 마냥 감격할 따름이었다.

DJ는 죽을 고비를 다섯 번, 한번은 공산 치하에서 나머지는 독재정권하에서 넘겼으며, 가택연금 6년, 감옥에서 십여 년을 보냈다고 한다. ‘인동초’처럼 가시덤불을 타고 뻗어난 인고의 삶이다.

민주화의 외진 길로 대통령에 올랐고, 대한민국 최초이자 단 하나뿐인 노벨상 수상자가 되셨다. 한 인간으로서 어찌 이 같은 영욕의 세월을 끝내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군사 독재 치하에서 참담했던 옥고를 29통의 봉함엽서에 기록한 책으로 1983년 일본에서 처음 발행된 ‘김대중 옥중서신’은 국내 출간 이후 국민의 사상적 지침서이자 생활 철학서가 되었다.

강연 끝자락에 학생을 위한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우리가 당장이라도 깊이 새겨야 할 교훈으로 더없이 적절했다. 당시 적어둔 소중한 기록 일부를 들춰보자.

첫째, ‘행동하는 양심’이 되십시오. 우리 마음속에는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천사가 있고, 나만 생각하며 남을 해코지하고자 하는 악마가 공존합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되기도 합니다. 천사가 되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 형제, 아내, 자식, 친구, 사회,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웃 사랑에 치중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랐든 오르지 못했든, 부자가 되었든 못되었든, 오래 살았든 못살았든, 인생의 삶에 성공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둘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간직하십시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을 해야 하느냐’하는 원리 원칙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판단하되, 이를 실현하려면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돈벌이하는데 지혜를 발휘하듯 능숙한 실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길입니다.

셋째, 모든 일을 결정할 때는 ‘세 번’ 생각하십시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직장에 취직할 때 먼저 어느 직장이 좋은지 선택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거기에 문제점이 없는가, 내게 정말로 적합한가 하는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작은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직장을 택하겠다고 하든가, 문제점이 너무 크니까 포기하겠다든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논리학의 변증법의 정반합과 같이 세 번 생각하게 되면 대부분의 일을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외교’하는 국민이 되십시오. 앞서 말한 바처럼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외교가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외교에 관심이 너무 적습니다. 성질이 급해서 외교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외교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리 주위에 있는 외국인부터 사귀기 시작하십시오. 가능한 한 세계 여러 나라를 자주 다니십시오.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벗들이 많이 생기도록 4천 7백만 전 국민이 외교관이 되어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민족주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 세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의 선배들은 오늘의 민주주의와 국가적 번영, 그리고 한류의 세계적 진출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은 이대로 가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세계 속에서 우뚝 서는 큰 봉우리가 될 것입니다. 선배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사랑하는 국민을 위해서도 여러분은 이러한 사명을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날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란 교실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어렵게 만나는 분도 아니었다. 바른 삶을 향한 내 생각과 실천을 고무하고 지지하는 존재라면 모두가, 그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 깊은 산과 푸른 강물처럼 참 스승은 우리의 열린 마음속에 항상 존재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의와 민주, 그리고 번영을 위한 대의보다는 사적이고 은밀한 정치적 욕망으로 꿈틀대는, 혹은 사법적 위기를 애써 모면하려는 정치인들의 기만과 ‘땡깡’에 아, 김대중 선생님이 그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