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코믹의 행간에 숨어있는 페미니즘 그리고 매스큘리즘
김한결 감독 ‘파일럿’
2024년 08월 05일(월) 17:16 |
김한결 감독 ‘파일럿’.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한결 감독 ‘파일럿’ 포스터.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공중파 TV 프로그램인 ‘유퀴즈’에 출연할 정도로 한국에어의 스타 파일럿인 한정우(배우 조정석). 공군사관학교 수석졸업이라는 이력도 화려하다(수석졸업자가 전역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언제까지나 잘나갈 수만은 없다. 전체 회식석상에서 오너 2세인 노정욱 상무(배우 현봉식)의 성차별적 발언을 수습하려다 궁지에 몰려 해고를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배우 김지현)는 이혼을 선언하고 정우는 본가로 들어간다. 본가에는 가수 이찬원 덕질에 여념없는 일명 ‘찬또할미’인 어머니(배우 오민애)와SNS에서 ASMR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중인 여동생 정미(배우 한선화)의 구박이 기다릴 뿐이다. 재취업이 어려워지자 궁여지책 끝에 여장을 하고 여동생 한정미의 이름으로 부기장에 응모한다. 한국에어의 오너 2세이자 한에어의 노문영 이사(배우 서재희)는 여성 파일럿을 키울 목적이 컸으므로, 한정우는 합격을 한다. 이후의 상황은 예상 만큼 좌충우돌 코믹한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는, 이후의 스토리 구성이 잘 맞아떨어지질 않아서 외화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 문화에는 썩 어우러지지 않는, ‘좌충우돌’격 ‘억지’ 코미디 느낌이 더 컸다. 배우 조정석의 여장이 예뻤네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특히, 윤슬기(배우 이주명)와의우정을 나누는 신에서의 투샷은 누가 봐도 억지스러웠다. 전반적 흐름에서 개연성은 적잖이 흐렸다. 영화 ‘파일럿’의 포인트는 남성이 여성 분장을 한다는 데 있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나 ‘연모’ 등에서는 카페에 입사하기 위해, 죽은 세자를 대신하기 위해 불가피하게여성이 남장을 한다. 영화 ‘왕의 남자’(2005)나 ‘패왕별희’(1993) 같은 퀴어 문화와는좀 다르게 구별지어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 감독답게 영화는 코믹의 행간에 따끔따끔 끼워놓은 것이 있다. 면접 신에서 여성 파일럿은 “남자친구 없고 결혼 안할 거고 애도 안 낳을” 거라고 해야 뽑히는사회임을 암암리에 보여준다. 조종실에서 여성 부기장에게 집적거리는 기장의 모습은 어쩌면 대한민국 직장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일는지 모른다. 이럴 때 영화에서처럼 “지랄견”으로 일축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고로 불시착을 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남자 기장은 부기장이 여자라서 조종석을 넘기지 않겠다는 성차별적 발언을 한다. 한 대 얻어맞을 만했다.
영화에서 한정우는 상사의 성희롱급 말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여승무원들이 꽃다발 같다”고 했다가 실직을 당했는데, 솔직히 자신의 해고에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가, 윤슬기로부터 “직장 내에서 여성에게 능력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예쁘다고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는 것을 비로소 수긍하게 된다. 이 모두가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여성이라서 당해야 하는 부조리에 공감하게 되고 성장한 것이다. 가장 좋지 않은 건 이걸 마케팅에 이용하는 기업의 오너다. 한정미 부기장이 사고비행기로부터 200명의 승객을 구한 영웅이 되자, 한에어는 역대급의 매출을 올린다.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격한 것은 마땅한 일. 그러나 그녀의 실체가 한정우임을 알게된 노문영은 남동생을 딛고 자신이 두 항공사 총괄 오너의 자리에 오르는 데 간판스타 격인 한정미 기장을 이용하려 한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역이용하려는 마케팅은 지구 인구의 절반수인 여성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코미디 영화를 위해 빛나는 조연은 배우 한선화의 백치미였다고 본다. 그녀가 걸그룹 가수 활동을 했을 때 보여주었던 철없이 밝은 엉뚱함이 성장해서 티없이 맑은 백치미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한선화 못지않게 배우 오민애의 연기가 잘 어우러져서 조연들의 케미스트리가 주연을 잘 뒷받침했다고 본다.
영화에서 한정우는 아들이 아빠처럼 파일럿이 되기를 바라지만 엄마처럼 발레리노를 꿈꾼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남성의 내면에 여성성이 잠재해 있듯이 여성의 내면에도 남성성이 잠재해 있다. 혹시 페미니즘과 매스큘리즘의 상호존중을 말하려 했는지도….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