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노르망디 상륙은 고통받는 인류해방 위한 연합작전”
<51>노르망디 80주년: 역사적 사건의 정치적 상징화
윈스턴 처칠·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련이 나치즘에 대한 공동 승리 기여
2024년 기념일 행사에 러시아는 초대받지 못하고, 우크라이나는 참석
노르망디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서구는 역사적 사건을 현대성과 연결
기념일, 지도자들에 의해 ‘라이언 일병인 젤렌스키 일병 구하기’로 정치화
윈스턴 처칠·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련이 나치즘에 대한 공동 승리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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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01일(목) 17:01 |
1944년 6월 6일 15만명 이상의 군인과 장교가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
이 작전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및 그 동맹국의 군인 15만명 이상이 상륙에 참여했다. 노르망디 상륙 동안 연합군은 총 4413명의 군인과 장교를 잃었고 실종되었으며, 5836명이 부상당하고 포로로 잡혔다. D-Day의 주요 결과는 새로운 부대와 장비를 이전하는 데 필요한 해안 교두보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첫째,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유럽의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상황은 어떠했는가?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전개되자, 나치군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젠 서부전선, 이탈리아 전선, 그리고 동부전선을 막아야 하는 3면 전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치군과의 노르망디 전투는 두 달 이상 지속됐다. 1944년 8월 25일 서부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시켰다. 반면에 당시 소련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독일 동부전선을 공략함으로써 독일 주력 부대를 끌어들여 노르망디에 대한 독일군 대응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1944년 6월 22일 소련군대는 벨라루스에서 독일군 중부 집단군을 상대로 작전을 시작했다. 바그라티온 작전에서는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벨라루스와 폴란드 동부 지역이 적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러시아군 군사기념센터에 따르면, 1944년 6월 23일부터 8월 29일까지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붉은 군대가 입은 전사 및 실종 17만8507명, 부상 58만7308명에 달했다. 그리고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려 27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이 중 군인이 870만 명이고 민간인이 1900만 명이다. 소련 국민이 전투에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결코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연합군과 소련군은 동부와 서부전선에서 서로 행동을 조율했다. 노르망디 상륙은 반히틀러 연합 국가의 전반적인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적대 행위의 주요 방향은 계속해서 주요 적군이 집중된 소련-독일 방향이었다. 하지만 소련군대가 동맹국을 도우러 온 경우도 있었다. 1944년 12월 독일군은 아르덴 지역에서 반격을 개시해 미국과 영국군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1945년 1월 6일 처칠은 스탈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945년 1월 12일 소련군대는 발트해에서 카르파티아산맥까지 전선을 따라 공세를 펼쳤다. 독일군은 아르덴에서 작전을 중단하고 군대를 그곳에서 동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스탈린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루스벨트는 소련군대의 행동을 위업이라고 불렀다.
당시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련이 나치즘에 대한 공동 승리에 기여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연합군의 상륙에 대해 루스벨트에게 보낸 전보에서 “미국과 영국군이 프랑스에서 얻은 영광스럽고 거대한 승리는 유럽의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노르망디에서 우리 군대가 얻은 승리는 그 위대함을 무색하게 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성취했다”라고 썼다. 그 후 윈스턴 처칠은 스탈린에게 “나는 이 기회를 빌려 내일 하원에서 내가 앞서 말한 것, 즉 독일의 전쟁 무기를 파괴한 것은 러시아 군대였다는 것을 반복할 것이다”라고 편지를 썼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을 기록했다. 그는 정치적 연설이 아니라 기도로 말했으며 그 내용은 딸 안나와 함께 썼다. 그는 라디오에서 “오 전능하신 하나님, 민족의 자랑인 우리 아들들이 오늘날 우리 공화국과 종교,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큰 위업을 행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결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 그들을 포용하시고 당신의 영웅적인 종들을 당신의 왕국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오 하나님,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믿음, 우리 아들들에 대한 믿음, 우리의 연합된 십자군에 대한 믿음을 주소서. 아멘!”이라고 낭독했다.
사실 연방 위원회 위원인 알렉세이 푸쉬코프는 소련군의 승리가 없었다면 노르망디의 연합군이 상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소련군대가 나치 독일 사단의 3분의 2를 격파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과거에 모든 동맹국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에 포함되고 독일의 항복조약 서명식에 참석할 것을 주장한 사람이 스탈린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기억하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것은 여전히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프랑스는 북대서양 동맹(NATO)과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러시아를 혐오하는 세력의 선봉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노르망디 상륙 기념식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슈뢰더 독일 총리와 러시아의 푸틴을 축하 행사에 초대했다. 그는 이 기억에 남는 사건을 냉전 승리 이후의 신호로 삼았고, 민주주의는 새롭고 확장된 형태로 서구를 지배했다고 했다.
그리고 2014년 상륙 70주년이 되는 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러시아 군대의 돈바스 진입에 관한 비밀 외교 협상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과 악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직접 협상하기로 합의한 민스크 협정으로 이어졌다.
2024년 기념일 행사에 러시아는 초대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나치즘의 패배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막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 축하 행사에서 이방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노르망디에 초청되었다. 프랑스 대통령 대변인은 노르망디 상륙과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정당한 투쟁 사이의 역사적 유사점을 고려했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신이 그와 함께하시길 바라며, 그들이 우리 없이도 축하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크라이나의 지도부가 거기에 참석할 것이다. 네오나치를 명예의 대좌에 올려놓고 그들을 국가적 영웅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나치즘에 맞서 싸우는 그토록 심각한 날짜를 어떻게 축하할 수 있는가? 오늘날 우크라이나 국가의 상징은 반데라(Bandera)이다. 그는 동유럽에서 히틀러의 주요 측근 중 한 명이었다. 전쟁 중 소련이 입은 손실은 엄청나다”라며 회상하며 말했다.
프랑스 정치학자 에릭 데네세는 “어처구니없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존재이다. 그것은 소련 일부였으며 나치 독일과 싸움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전투기는 붉은 군대의 일원으로 싸웠다. 반면에 스테판 반데라의 지지자 중에는 나치 협력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아닌 젤렌스키에게 그토록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치인 니콜라스 뒤퐁-아이냥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방자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역사는 정치이기에, 정치를 역사로 선포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넷째, 노르망디 80주년 역사적 사건의 정치적 상징화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대선 경쟁의 유력한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배경으로 자신의 민주적 자격에 대한 연설을 노르망디 상륙 기념식에서 하였다. 프랑스 대통령은 친유럽적 플랫폼을 바탕으로 선거 캠페인을 구축했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반자유주의와 극우 세력에 맞서는 대륙 투쟁의 초석으로 삼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동맹이 분열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새로운 기회를 열 계획이다. 바이든과 마크롱 대통령은 유권자들을 흔들기 위해 현재의 위협에 맞서 싸울 기회를 잡고자 했었으나 나중에 정치적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러시아는 유럽 지정학적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제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연대 약속을 하였다.
프랑스와 미국 대통령은 D-Day 축하 행사를 특히 대서양 관계를 갱신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이번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합류하였고, 그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생존을 위한 자국의 투쟁을 히틀러에 대항한 연합군의 전투 메아리가 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쟁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수 있도록 서방에 촉구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온프레이는 우크라이나 분쟁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기념하는 기념행사에서 마크롱 대통령 연설을 지켜보고 그에게 러시아와의 전쟁을 선동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주권국가에 지시를 내리는 미국 대통령은 누구인가? 또한 그들에게는 친구가 있거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들만을 친구로 여긴다. 이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의사결정의 독립성은 어디로 갔는가? 이 모든 것에서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사 목표물에 서구산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허용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취약하며 이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곳 노르망디 해안에서 자유와 폭정 사이의 전투가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다섯째, 현대에 이루어졌던 노르망디 상륙 기념식은 어떻게 정치화되고 있는가? 국제관계대학의 국제 프로세스 분석 연구소 연구원 알렉세이 치카체프는 “노르망디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서구는 언제나처럼 역사적 사건을 현대성과 연결함으로써 외부 세력에게 파괴할 수 없는 통일성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1944년에 그들이 모두 하나로 뭉쳤고 그것이 지금 그들이 함께 서 있는 방식과 유사점을 찾고 싶어한다. 물론 이 유사점은 형식이나 내용 모두 매우 형편없지만, 그들이 외부로 보내고 싶어하는 정치적 상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련군대는 동부전선에서 나치를 박살 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나치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기념물을 파괴하고 동시에 SS 갈리시아 사단 및 기타 나치 부대의 우크라이나 협력자들을 찬양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기념일 행사에서 연설한 서방 지도자들이 차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언급하면서 오늘날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점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80년 전 동맹국들이 폭정으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에 상륙했고, 이제는 미국이 이끄는 문명 세계가 동일한 폭정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독립 언론인이자 유명 블로거인 카일 베커는 “바이든은 노르망디 상륙을 우크라이나를 위한 싸움에 비유했다. 이들은 아무것도 신성하지 않은 한심한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는 회원국이 아닌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국가이다. 이는 NATO의 자유, 개인 권리, 법치라는 서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비판가들은 “노르망디 기념일에 현재 서방 지도자들이 ‘라이언 일병인 젤렌스키 일병 구하기’(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모였다. 지금 우리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2’를 시청하고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기념식의 관중들에는 스필버그와 함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타 톰 행크스도 있었다. 이러한 제스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는 세계질서 속에서 서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상징으로 의도되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