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선(善)을 위장한 악에 대한 응징은 가능할까
마이클 모한 감독 ‘이메큘레이트’
2024년 07월 22일(월) 17:27
마이클 모한 감독 ‘이메큘레이트’. (주)디스테이션 제공
마이클 모한 감독 ‘이메큘레이트’ 포스터. (주)디스테이션 제공
여름철 개봉영화에 호러물이 빠질 수 없다. 오싹함이 삼복더위를 잠깐 피해줄 수있다는 의도에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런 오싹함을 썩 즐기질 않은 편이라 동반 관람할 젊은 친구를 물색해보았지만 의외로 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어서‘무더위=호러·공포영화’ 공식은 옛말인가 싶다. 영화의 타이틀 이메큘레이트(immaculate)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깨끗한’ 또는‘결점 없는’이란 의미인데, 영화의 내용으로 보아 ‘순결한’의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종교적으로는 ‘무원죄 잉태’로 해석함이 적절해 보인다.

영화는 초반부터 공포 시퀀스다. 수녀원을 탈출하려는 어느 수녀가 탈출에 실패하자 그녀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잔혹 신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공포 및 잔혹함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인 수녀 세실리아(배우 시드니 스위니)는 이탈리아 입국 심사를 받는다. 이탈리아 어에 서툰 세실리아는 마중 나온 테데스키(배우 알바로 모르테) 신부의 등장이 반갑기 짝이 없다. 그녀가 집처럼 지내던 수녀원이 폐쇄되자 테데스키 신부의 주선으로 이탈리아의 오래된 수녀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신실한 신앙이 가득한 그녀는 어릴적 얼음물에 빠져 익사할 뻔한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믿음 가운데 수녀의 길을 선택했다.

수녀원은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고풍스럽고 신비한 건축물이다. 그런 만큼 어딘가 비밀스럽고 음산하기도 하다. 서약을 하던 날, 그녀는 이 수녀원의 성물인 예수의 십자가에 박힌 못을 받아들다 기절을 한다. 밤이면 꾸는 그녀의 악몽은 꿈인 것이 다행이다 생각될 만큼 억압적이고 공포스럽기 이를 데 없다. 어느 날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임신이라는 주치의의 진단이 떨어진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주교, 원장 수녀, 테데스키 신부와 주치의. 이들은 성모 마리아처럼 구세주를 잉태한 기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수녀원으로 들어올 적에 사전에 버진 검사까지 했다는 납득이 가지 않는 대사도 있었다. 기적의 존재로 추앙받고 보호받지만 세실리아의 눈은 가없이 슬프기만 하다. 그런그녀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바라보던 이자벨 수녀는 세실리아가 아니라 자신이었어야 했다며 위층에서 떨어져 죽고 이를 비판하던 동료 수녀 그웬은 혀를 잘리는 벌을 받는다. 이를 목도하게 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이제 선택은 탈출뿐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선을 위장한 악에 대한 응징까지 하고 싶다. 신마다 가득한 공포와 의혹으로 필자는 잔뜩 졸아들어 영화를 보았다. 러닝타임이 짧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음땡으로 풀려나자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그만큼 공포스러웠다는 것이었고 쉼 없이 공포스러웠다는 거였다. 공포 영화가 강약 없이 공포로 일관한다는 것은 뭔가 아마추어적이다. 공포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아귀가 맞지 않은 부분이 돌출되는 등 구성상의 갸웃한 개연성은 관객을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임신 초기, 중기, 말기 등의 소제목까지 붙인 시퀀스의 구분이 적절했는지도 검토의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종교적으로 논란의 여지를 잘 소거했을지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충격적으로 잔혹한데 결말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끝까지…. 영화 ‘이메큘레이트’의 결말은 한 편의 잔혹동화를 연상케 한다. 우리에게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안겨주는 동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원작을 보면, 과연 그럴까 싶게 강도 높은 잔혹함이 들어있다. 우리에게 번역된 이들의 동화나 디즈니 사가 마법을 부린 애니메이션에는 잔혹함이 빠져 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나 ‘헨젤과 그레텔’ 등 원작에 있는 잔혹성을 들여다보면,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유리구두에 발을 넣기 위해 발가락을 잘랐다.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가 아이들을 숲에 버린다는 것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녀를 화덕에 집어넣어 죽였다. 백설공주의 왕비는 불타는 철제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응징을 받았다는 등의 부정적 내용을 필요상 소거한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에게 구전되어온 ‘장화홍련’전에도 19금에 해당하는 스토리가 야사에 전해오기도 했다. 이렇듯 동화라서 ‘복수’라는 응징, 잔혹성 등의 요소를 소거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의 요소에서도 빠지기를 바란다.

영화에서 잔상으로 남는 건 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뿜어내는 어린 수녀로서의 신실한 아름다움 그리고 피로 떡칠을 한 채 응징하는 마지막 신이다. 영화 ‘이메큘레이트’는 시드니가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한 만큼 그녀로서 최선을 다한 연기였으리라. 7월 17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