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가족 전체 탈북 후 날마다 좌충우돌 남한살이 중
날마다, 남한살이
한서희 | 싱긋 | 1만2800원
2024년 07월 18일(목) 17:40
날마다, 남한살이.
태어나보니 북한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저자 한서희의 아버지는 간부, 어머니는 인민반장이어서 밥을 굶지는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피아노면 피아노, 노래면 노래 등 배우라면 배우고, 외우라면 외우면서 자랐다. 남한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라고 세뇌 당했지만 몰래 보는 남한의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오빠가 사라졌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사실 탈북한 가족은 오빠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모들과 외할머니가 먼저 한국으로 떠났다. 오빠가 떠난 이상 남은 가족이 북한에서 계속 이전처럼 살기는 어려워졌다. ‘우리도 가자!’

2007년, 그렇게 운명처럼 떠나와 정착한 서울은 이방인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누구든 일을 하는 만큼 돈을 버는 사회지만 북향민(北鄕民) 또는 탈북민에게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영역과 기회 자체가 적다. 그렇다 보니 진입 장벽이 낮은 일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너무 피폐해지고, 고단해진다. 한국인이나 일찍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은 다른 사람들과 격차도 점점 벌어져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기도 하고…….

“북한 사람들은 그냥 좀 무서워” “한서희 씨, 한글 쓸 줄 알아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에 저자는 숱하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탈북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텅빈 집을 중고 가전으로 채워준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발 벗고 일자리를 구해준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 덕분에 저자는 조금씩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갔다.

북한 관련 콘텐츠를 예능으로 접근한 장수 TV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첫회 출연자, 북한의 김태희, 성악하는 탈북민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정착 초기만 해도 방송 섭외 요청을 다 거절했다. 하지만 점차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권 탄압이 심한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앞으로 한국에 와서 정착할 탈북민을 위해서라도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을 좀 바꾸고 싶었다. 저자는 용기를 내어 통일 안보 강사로 활동하면서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 〈아침마당〉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북한과 한국에서 각각 인생의 절반을 보낸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 긴박하고도 지난했던 탈북 과정, 부모님과 함께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한 저자는 가정을 꾸리고 방송인으로, 워킹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점들, 나아가 통일 이후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책 속에 담았다. 누구보다도 스마트하게, 부지런히 남한살이, 서울살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의 일상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