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 21세기에도 <세일즈맨의 죽음>이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2024년 07월 16일(화) 18:03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에 돌입한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상반기가 지나면서 전국은 장마 습기로 가득 찼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노조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총파업에 들어가 쟁의를 이어가고 있다. 참가자들은 높은 임금 인상률 적용, 유급휴가 약속 이행, 초과이익성과급(OPI) 기준 개선 등을 요구했다. 그런데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올해 2분기 모처럼 실적 반등을 보인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이렇게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처음으로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는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노조로서 구시대의 파업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전체 노동 조건을 고려하면 좋겠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삼성전자 노조차원에서 개인적으로 월급을 인상하고 초과성과급 기준을 개선하라는 방향보다 본질적으로 소모품으로만 사용되다가 시간이 지난 뒤 버려지는 구조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다쳐도 보호받지 못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이나 노조 가입도 하지 못하는 임시직들의 상황도 포함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면 국민적 동조를 얻을 수 있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가치의 변화와 가족의 문제를 잘 풀어내 시대와 관계없이 언제나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대학 때 윌리 로만의 대사를 읽으시던 교수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던 일도 기억난다. 60세를 넘긴 주인공 윌리 로먼은 평생 먼 거리를 운전하면서 물건을 파는 일을 해 온 가장이다.



윌리: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플루트 소리가 잦아들었다. 윌리는 린다 옆 침대에 앉는다. 좀 멍하니) 할 수가 없어.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여보./...윌리: (잠시 뒤) 갑자기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어. 차가 자꾸 길가로 빠지는 거 있지?



극은 정신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고 체력도 바닥난 윌리(주인공)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내는 태어나 이름 지을 때부터 알아 왔던 사장님(전 사장님의 아들)을 만나 내근직을 부탁해보라고 말한다. 그는 온 인생을 다 바쳐 한 회사에서 영업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여유 없는 생활만 남았다.



윌리:...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장 나기 전에 내 것으로 가져 봤으면 좋겠네! 만날 고물만 내 차지야! 막 자동차 할부가 끝나니 폐차 직전이지. .../린다:...여보. 하지만 이번만 내면 주택 융자 할부도 끝이에요. 이것만 내고 나면 여보, 이 집이 이제 우리 것이 되는 거예요./윌리: 이십오 년이야!



현대는 할부와 융자의 시대이다. 할부로 물건을 사고 25년, 30년 융자를 얻어 집을 산다. 할부가 끝날 때쯤 되면 물건은 고장 나서 쓸 수 없게 된다. 아마 융자가 끝나면 윌리 로만처럼 사회생활도 끝이 날 것이다. 내근직을 부탁하자 그는 순식간에 해고당해 졸지에 생활을 영위할 방법을 잃었다. 평생을 바쳤든 성실했든 그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윌리: 보스턴에 가겠습니다./하워드: 로먼 씨, 더 이상 보스턴에 안 가도 됩니다. /윌리: 아니, 왜요? /하워드: 더 이상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랫동안 이 말을 하려고 별러 왔어요. / 윌리: 사장님, 지금 저를 해고하는 겁니까?/하워드: 로먼씨에게는 길고 오랜 휴가가 필요할 것 같아요.

- <세일즈맨의 죽음(민음사, 김유나 옮김)> 중에서



이 드라마의 깊은 의미는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길 바라며 1949년 작품이지만 소개하는 이유는 소모품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저 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상황은 20세기보다 더욱 극단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물질을 중심으로 엮이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