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강렬한 휴머니즘…그리고 먹먹한 감동
이종필 감독 ‘탈주’
2024년 07월 08일(월) 17:07
이종필 감독 ‘탈주’.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종필 감독 ‘탈주’ 포스터.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함무라비 법전을 해독하면 이런 뉘앙스의 글귀가 있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참 건방져’라는. 필자가 10대, 20대였을 적에 기성세대로부터 유사한 차별화된 시선을 받았고 그런 기성세대를 우리는 극심한 세대차라며 도외시했던 기억이 있다. 중·장년 시절에는 갓 스무 살이 된 학생들을 이해하기 꽤 버거웠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세대간 차이는 아주 오랫동안 거듭되어온 역사적 사회현상인가 싶다. 전세계적으로 희소한 분단국가의 운명체를 짊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20대는 이전 세대(전쟁을 겪은 세대, 전쟁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와 달리 남과 북에서 각각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한의 MZ세대가 이전 세대와 확연하게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면, 북한이라 해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 ‘탈주’는 강렬한 휴머니즘과 가슴 먹먹한 감동의 이야기다. 북한의 20대가 탈북하고자 의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 세대와 달라진 그들의 변모를 상상하게 만드는 여지도 제공한다. 10년의 군복무가 막바지인 북한군 중사 임규남(배우 이제훈)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북한 체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 탈북을 꿈꾸는 병사다.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와 DMZ 지형을 파악하고 지뢰 표시와 함께 자신만의 지도를 작성해간다. 이를 눈치챈 사병 동혁(배우 홍사빈)은 자신을 남한에 정착한 어머니와 여동생이 보고 싶으니 데려가달라 부탁한다. 기회를 보고 있던 규남과 달리 동혁의 성급한 실행은 화를 불러온다. 결국, 규남과 동혁은 탈주범으로 구금되고 만다.

파견 나온 보위부 소좌 리현상(배우 구교환)은 어릴 적 같이 놀던 동생 규남을 탈주범을 잡은 영웅으로 탈바꿈시키고는 사단장 직속 보좌자리까지 마련해준다. 현상이 북한 고위층이 누리는 화려한 파티에 쉽게 융화되듯 현상은 규남에게 그럭저럭 살아가기를 권한다. “허튼 생각 말고 받아들여. 이것이 네 운명이야.” 이는 피아니스트로서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온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현상의 삶의 방식이다. 현상은 자신의 호의에도 2차 탈주를 시도하고 있는 규남을 보며 그간 현상이 키우던 애완견만도 못한 규남이라 생각했건만 자신의 꿈을 위해 질주하는 모습은 현상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것과도 같아 현상은 규남을 끝까지 추격한다.

가끔 ‘이제 만나러 갑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리현상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우리 대학 음악과 겸임교수였던 그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어 물었다. “할아버지가 김일성과 동지일 만큼 고위급 가문에서 왜 탈북을 결심하셨나요.?” 그러자 그는 처음 만난 사람마다 듣는 고정 질문이라며 도리질을 하더니 “내가 하고 싶은 선곡, 음악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고통.”이어서였노라 답했다.

예술인에게 체제와 요구는 엄청난 압박이었을 것이고 그를 극복하지 못한 현상은 더 큰 압박감이 내면에 상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코 앞에서 총을 거둔 것은 그나마 밑바닥에 잔존한 예술적 자존감 때문이었나 싶기도 했다. 영화는 규남을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보여준다. 실패할 자유조차 없는 북한땅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욕망을 규남은 갈망한다. 현상에게 실패란 피해야 할 절대적인 것이라면, 규남에게 실패란 설레는 도전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교과서연구회에서 새터민(탈북민)을 초청,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없는 북한의 교과서에 대한 얘기를 들은 바 있다. 바로 전날 카톡을 통해 그들의 교과서 사진을 북한으로부터 전송받아 보여주던 사실도 통일이 목전에 온 듯 놀라움이 컸지만, 그녀의 개인사도 적잖이 놀라웠다. 그녀는 고위간부층 자녀라 실상 북한에서의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미디어를 통해 쌓아온 남한에의 동경을 거둘 수 없어 탈북을 했노라 했다. 어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두 번째 탈북을 감행했던 그녀는 “한번 맛본 터라 다시 탈북을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녀의 선택은 영화 속 규남의 결연한 의지와 닮았다는 생각이다. 7월 3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