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낯선 땅 중동에서 만난 ‘어머니의 사랑’
드니 빌뇌브 감독 ‘그을린 사랑’
2024년 07월 01일(월) 17:18
그을린 사랑. ㈜티캐스트 제공
그을린 사랑 포스터. ㈜티캐스트 제공
제13회 광주독립영화제가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필자로서는 영화제에 등장하는 영화가 집행부의 신중한 선정과 함께 감동을 동반하기 쉬워 주목을 하는 편이다. 특히, 10년도 더 전에 감상했던 명작이 포함돼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로 거장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했던 ‘그을린 사랑’(2010)이다. 빌뇌브 감독은 필자가 3월 4일자 ‘필름 에세이’에 소개했던 ‘듄: 파트2’의 감독이기도 하다.

예술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은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 와이디 무아와드의 희곡 ‘Incendies(화염)’이다. 연극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빌뇌브 감독이 각색 등 사전작업에 5년을 공들여 준비한 작품이어서였는지 ‘그을린 사랑’은 감독의 출세작이 되어주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쌍둥이 남매 잔느(배우 멜리사 데소르모-풀랭)와 시몽(배우 막심 고데트)은 어머니 나왈(배우 루브나 아자발)의 부고를 듣고 모인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유언을 접하고서 충격에 빠진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형제를 찾아 어머니의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가 그랬다.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고향 레바논으로 떠난 남매는 어머니의 충격적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게된다. “1+1=2인데 1+1=1이 될 수 있을까?” 시몽의 대사는 과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다 내지른 탄식과도 같은 대사다. 이어지는 잔느의 경악하는 절규…. 이때 필자는 노르웨이 뭉크 박물관에 걸려 있는 작품 ‘절규’가 오버랩되었다. 잔인한 운명의 장난, 폭력의 악순환에 의한 인간의 실존적 비극, 그래서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뭘까.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이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고 아프리카의정치적·종교적 변혁이 가져오는 내전도 끊임은 없다. 세기를 거듭해서 전쟁과 함께 내전을 치르는 중동에서 종교 이데올로기 전을 치르고 있는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구 한 켠에서 일상처럼 전쟁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타오르고 화염에 그을려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진실 속에서 인간의 운명이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되는지, 역사와 운명에 그을린 진실이 버겁고 아프다. 이 가운데 한 개인에게 끼치는 치명적 영향을 나왈이라는 한 여성은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영화는 진중하게 비쳐준다. 숨막힐 듯 관객을 압도하는 스토리를 어떻게 대입하는가는 감독의 몫이다. 감독은 대서사극처럼 중간중간에 제목을 붙여넣었다. 마치 암전으로 장을 바꾸는 연극처럼(잔뜩 몰입한 관객의 호흡을 장바꿈으로 잠시 숨을 고르듯이) 10개의 장으로 나누었는데 화염처럼 피처럼 붉은 바탕에 얹어놓은 중간제목은 과거와 현재를 연계하는 서사적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불에 그을린 상흔마냥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나왈의 에피소드들을 중간제목이 정리하고 통합되게 하여 주제를 명료하게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기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간혹 볼 수 있는데, 과거 서사의 비선형적 전개와 현재 서사의 유기적 결합이 다층적이면서도 풍부한 서사를 발생시키는 모티프의 확장 효과를 가져온다. 이 영화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발달심리학에서 얘기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정신분석가 프로이드에 의해 차용, 남성이면 누구나 겪는 성장기의 보편적 특성으로 이름 붙여졌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그간 작품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다루어왔다. 스트라빈스키의 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 앙드레 지드의 ‘외디프’, 장콕토의 ‘폭탄’ 등에서도 소재로 삼아왔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어머니 이오카스테에 대해 초점을 맞춘 작품은 드물다. 뿐만 아니라, 이오카스테의 존재는 그늘 속에 묻혀 있었다는 생각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의나왈은 그늘로부터 끌어낸 중동의 이오카스테였다. 이오카스테는 나왈의 옷을 입고 부활하였으나 나왈은 결코 이오카스테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제물로 바친 비극을 직면하고, 다시 이를 사랑으로 수습하였다.

그녀의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Nothing is beautiful than to betogether (함께 한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필자에게 남는 생각이 있었다. ‘제아무리 장난을 치는 운명도 어머니라는 존재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